[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작은 어촌마을서 물건너온 수많은 사연

목동훈 기자

발행일 2018-01-11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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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전쟁·산업화등 역사 순간
도시를 움직인 인물·사건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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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바다의 도시다. 바다는 인천이 성장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그렇다. 바닷길은 사람과 물품이 오가는 통로가 됐고, 인천 앞바다 섬들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소중한 자원이 됐다. 135년 전, 작은 어촌마을 '제물포'가 개항하면서 인천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전에도 인천은 서해안 주요 도시와 서울, 그리고 중국과 일본까지 뱃길이 이어지는 등 해상 교역의 중심지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1883년 개항은 닫혀 있던 도시를 연 것이 아닌, 기존 국제무역항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봐야 할 것이다.

일제 강압의 개항이라는 점에서 많은 아픔도 겪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 경제 수탈의 창구가 됐고, 조선의 항만노동자들은 일제의 압박과 착취에 맞서 싸워야 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항만시설 대부분이 파괴돼 항만기능을 상실했다.

그 어려웠던 개항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인천항은 역사를 써 나갔다. 1918년 갑문식(閘門式) 제1선거가 건설되면서 10m가 넘는 조수 간만의 차를 극복했으며, 1974년 제2선거 건설로 최대 5만t급 대형 선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해 내항 4부두에는 대한민국 제1호 컨테이너터미널이 건설됐다. 이후 인천항은 남항·북항·신항 개발로 외항시대를 열었으며, 지난해 드디어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300만TEU'를 달성했다. 이제 인천항은 세계 30위권 컨테이너항만 진입을 목표로 뛰고 있다.

인천항 발전에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부두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기술자를 비롯해 선장, 등대지기, 어민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인천항을 움직이고,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고 있다.

인천에 올해는 큰 의미가 있다. 15년 만에 '바다의 날' 기념식이 개최되며 등대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국제항로표지협회(IALA) 콘퍼런스'도 열린다. 인천항 갑문이 축조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경인일보는 이같이 의미 있는 해에 연중기획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를 진행한다. 인천항과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관련한 역사·인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독자들이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인천항과 바다에 관한 깊이 있는 기사를 만날 수 있을 터이다. 인천항과 바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졌으면 한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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