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42]대한그룹-6 대한방직과 대한제당

5·16정변 등 변혁기 사세위축 시련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8-01-16 제7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전주·대구 직포공장 등 성장세
中 진출 1997년 의류사업 확장
방직·제당만 창업 가문 소유로

2018011501000878900041711
대한방직은 1953년 8월 설경동 등이 자본금 1천만원으로 설립한 섬유업체다. 1954년 10월 수원공장에 방기(紡機) 1만 추 등 시설을 갖춰 조업을 시작했다. 이듬해 8월에는 대구에도 공장을 완성해 방기와 직기(織機) 등을 갖추고 조업을 개시했다.

설원식은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뒤 1955년부터 중앙대 문과대학에서 강사생활을 하다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전선 사장직에 갑자기 취임했다. 이후 3년간 부친과 재산다툼을 벌인 끝에 결국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대한그룹으로부터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1973년 12월에는 대한방직의 주식을 상장해 기업을 공개했다. 1975년 8월 전주에 공장을 세워 생산증대를 도모하였고, 1975년 전주공장(방직) 조업을 시작한 데 이어 1977년에는 대구 월배공장(염색, 가공)의 조업에 착수했다.

대한방직은 1986년 5월 전주에 직포공장을 신축하는 등 꾸준히 성장했다. 1987년 4월 수원공장에 정방기를 증설하고, 6월에는 대한종합개발(주)를 흡수·합병했으며, 7월에는 월배나염기 2라인을 증설하고, 전주 방적2공장을 신축했다. 1989년 9월 대구직포 3B공장의 시설을 최신설비로 교체하고, 전주공장에도 11대를 증설했다.

1990년 4월에는 월배 제2열 광폭 최신설비로 증설하였으며, 11월에는 대구공장에 연사기 9대를 증설했다. 1993년 7월에는 여의도 본사사옥을 준공했으며, 1994년 4월에는 중국 칭다오에 제10직포창과 합작계약을 하였고, 1995년 5월 아세아파이낸스를 설립했다.

1994년 중국 칭다오에 대원방직유한공사를 설립했고, 1997년 의류사업부를 신설하고 의류 사업에 진출했다.

설원식은 1998년에 대한방직의 경영권을 장남인 설범에게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대한제당은 1956년 7월 대동제당으로 설립됐다. 사세확장을 고민하던 설경동이 식품사업에 눈을 돌렸는데 대상이 설탕이었다. 국내 설탕 수요가 1953년 2만1천201톤에서 1956년에는 6만6천938톤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던 것이다.

당시 선발기업인 제일제당(CJ)은 자기자본 대비 무려 8배 이상의 이익을 실현하는 등 초호황을 누렸다.

1950년대 중반부터 제당업에 참여하는 업체들이 속출했는데 1953년에 최초로 제일제당이 설립됐고, 1954년 8월에는 동양제당, 같은 해 12월에는 한국제당이 각각 설립됐다.

삼양사는 1955년 12월에 경남 울산에 제당공장을 건설했다. 제당업 신규진출은 1956년에도 계속돼 2월에는 금성제당, 3월에는 해태제과 제당부문, 7월에는 대동제당이 막차로 경기도 시흥에 제당공장 건설작업을 서두른 것이다.

설경동은 정부의 승인을 얻어 독일에서 기계를 발주하는 등 신규 사업에 진출했는데 이로써 국내 제당산업은 경쟁체제로 전환했다.

7개 제당업체의 연 생산능력은 15만 톤이 되어 당시 국내수요량 5만 톤 보다 3배 이상 과잉생산을 초래했다. 정부와 제당업계는 1956년 3월에 사단법인 대한제당협회를 설립해서 카르텔을 형성해 과당경쟁으로 인한 공멸을 막았다.

1968년 12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고 1969년 8월에 대한제당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79년 5월 인천사료공장을 준공하며 사료사업에도 진출했다. 1988년 7월 울산사료공장에 이어 이듬해 10월 인천특수 사료공장을 준공했다. 이 회사는 동년에 설경동의 4남 설원봉이 대한전선그룹에서 분리해 독립했다.

한국경제를 장악한 30대 재벌은 1950년대 전후부흥기를 배경으로 확고한 뿌리를 내렸다. 그 와중에서 태창, 삼성, 삼호, 개풍, 삼화, 대한그룹 등이 특히 두각을 나타냈으나 1960년대 들어 4·19혁명과 5·16정변 등 급격한 변혁기를 맞아 재벌지형에 커다란 변화가 초래되었다.

이후 태창과 삼호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개풍과 대한그룹 등은 사세가 크게 위축됐다. 정치권력과의 유착 정도가 심할수록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대한그룹은 창업 3대에 들어 대한방직과 대한제당만 창업자 가문의 소유로 남았다. 오늘날 대한그룹은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이한구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