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미루나무

권성훈

발행일 2018-01-22 제1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2018012101001285300061492

나는 오늘처럼 서서 이 겨울을 다 보았다

수많은 눈이 저 호수 속으로 몸을 던지고

산짐승들은 밤낮으로 들판을 찾았다



달빛이 산줄기를 뒤덮기도 했지만 온기는 전혀 없었다



바람은 수시로 내게 거친 말을 건넸으나

나는 이 겨울을 바라볼 뿐이었다



졸음을 몰고 오는 햇살이 발아래를 적신다

겨울이 흩어지고 있다



나는 오늘처럼 서서 이 겨울을 그대로 보낼 것이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홍용희(1966~)


2018012101001285300061491
오래된 것일수록 새 것이 모방하지 못하는 지혜가 담겨 있다. 세월을 견뎌낸 고목의 울퉁불퉁한 안쪽 겹겹의 결들은 사물의 이치를 배반하지 않고 그대로 감득한 기록이 아닐까. 흐르는 풍경을 떠나지 않는 지혜의 숲에 '오늘처럼 서서' 있는 '미루나무'는 무엇을 보았는가. '수많은 눈이 저 호수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과, '산짐승들은 밤낮으로 들판을' 찾는 것과, '달빛이 산줄기를 뒤덮기도' 하며 '졸음을 몰고 오는 햇살이 발아래를' 적시는 겨울을 미루나무 한 그루가 온 몸으로 적고 있다. 한 치 앞도 벗어날 수 없는 속박에서 결박당하지 않기 위해 '오늘처럼 서서 이 겨울을 그대로 보낼 것'이라는 담대한 사색에 있다면 우리는 '무슨 말을 하겠는가' 바라볼 뿐.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