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바닷길로 세계를 잇는 외항선 선장

경제 대국 개척한 항해사들… 오늘도 새로운 길을 그린다

정운 기자

발행일 2018-01-25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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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항만 인근 벗어나면 항로 자유
30년경력 박성택 선장 "정해진 길 없어"
날씨·안전·연료 효율 등 고려해 선택

1883년 개항 이후 급격히 성장한 인천항
청도항로 폐지로 지역경제 큰 타격 받아
산업화 시대부터 '수출입 항만' 자리매김

국제화물 운송의 99.7% 바다 통해 교역
車·식료품은 물론 스포츠·문화도 '전파'
세계화 시대, 북극 루트 등 주도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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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는 차량이 다니는 도로와 사람이 다니는 인도가 있다. 하늘은 각 나라의 상공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항공기가 이용할 수 있는 '하늘길'이 정해져 있다. 바다는 어떨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가 정답이다. 인천항과 같은 항만 인근에는 배들이 이용해야 하는 '바닷길'인 항로가 있다. 항만마다 많은 선박이 다니고 있어 충돌·좌초 등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인천 내항에서 출발한 배는 문갑도 인근 해역까지 정해져 있는 '서수도'라는 출항항로를 이용해야 한다. 서수도 항로는 출항하는 선박만 이용할 수 있는 '일방통행 길'이다. 마찬가지로 입항하는 선박만 이용할 수 있는 항로도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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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영국 군함 Flying Fish호 선원들이 함장 R.F. Hoskyn의 명령으로 작성한 인천항 해도. 제물포와 영종도, 월미도 인근 해역의 깊이 등이 표시돼 있다. 인천 중구에 위치한 올림포스 호텔에 걸려 있는 것을 촬영했다. /임순석·조재현기자 sseok@kyeongin.com

하지만 각국에서 정한 '항만 인근 항로'를 벗어나면 정해져 있는 길은 없다. 이곳에선 선박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없기도 한' 이유다. 국가와 국가를 오가는 선박들은 자신만의 '항로'를 선택해 바다를 항해한다.


초대형 유조선(VLCC, Very Large Crude oil Carrier) C.VISION호는 이란과 쿠웨이트에서 원유를 싣고 호르무즈 해협, 인도 남쪽 연안, 말라카해협, 싱가포르 해협 등을 지나 지난 13일 오후 인천 북항 SK인천석유화학 부두에 도착했다. 항해 기간은 20여 일.

하지만 정해져 있는 항로를 지난 기간은 하루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기간은 선사와 선장이 배가 가는 길을 '선택'한다.

이날 C.VISION호에서 만난 박성택(56) 선장은 "그 넓은 바다에 정해진 길이 있을 수 없다"며 "목적지와 출발지가 같더라도 매번 가는 길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항로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안전이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태풍이 몰아치는 곳으로 갈 이유가 없다"고 했다. 효율성도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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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북항에 정박 중인 C.VISION호. /임순석·조재현기자 sseok@kyeongin.com

30만t의 원유를 실을 수 있는 C.VISION호는 하루 운항하는 데 약 200t의 연료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안전을 전제로 수송 기간과 연료 소모를 줄이는 항로를 선택한다.

박 선장은 1987년부터 선원으로 일했다. 30년 동안 그가 배를 타고 간 곳은 56개국, 도시는 100곳이 넘는다.

그는 "지금은 장비가 발달해서 주변에 섬과 같은 지형지물이 하나도 없어도 배가 있는 위치가 위·경도로 정확히 표시된다"며 "하지만 이러한 장비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별과 태양, 조류 등으로 배의 위치를 확인하고 항해했다"고 말했다.

이어 "3항사로 일할 때 1주일 동안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해와 별을 보지 못했다"며 "해류 정보만 가지고 1주일 동안 항해를 했는데, 원래 목적지와 20㎞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던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박 선장이 운항하는 배 C.VISION호는 한 번에 약 200만 배럴의 원유를 선적할 수 있다. 이번에도 202만 배럴의 원유를 싣고 왔다. 150만 배럴은 울산에 내리고, 나머지 원유를 인천항에서 하역했다. 이 배가 한 번에 싣고 온 원유량은 우리나라 전체가 하루에 쓰는 양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 13일 만난 C.VISION호 박성택 선장. 박성택 선장은 “정해진 바닷길은 없다. 날씨나 기상 등의 여부에 따라서 목적지가 같아도 다른 항로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임순석·조재현기자 sseok@kyeongin.com

에너지경제연구원이 펴낸 에너지통계 월보를 보면, 2016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소비한 석유는 1억1천476만toe(석유환산톤)으로 8억5천만 배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전체가 하루에 약 230만 배럴을 사용한 셈이다.

박 선장은 "선원이라는 직업은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집채 만한 파도에 맞닥뜨리거나 해적을 만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이 일을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소말리아, 싱가포르 인근 해역에서는 해적이 자주 출몰한다"며 "소말리아 해적은 총기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선원들이 해적 피해를 막기 위해 '해적 불침번'을 선다"고 말했다.

국토교통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바다를 통한 국제화물 운송량은 12억1천678만t으로, 전체 화물의 99.7%에 이른다. 항공화물은 352만t으로 분담률은 0.3%에 불과하다. 수출입 화물의 대부분이 바닷길을 통해 운송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인천항에 들어왔다가 나간 외항선은 8천378척이다. 이들 배가 향한 곳은 전 세계 142개국 853개 도시다. 우리나라는 이들 배에 물품을 실어 외국에 수출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기도 한다. 자동차, 전자제품, 식료품, 원유, 장난감, 의류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 대부분은 바다를 거쳐 우리에게 온다.

바다는 물품뿐만 아니라 문화가 확산하는 데에도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축구가 전파된 것도 영국 함정에 의해서다.

대한축구협회가 펴낸 '한국축구 100년사'에는 '영국을 모태로 하는 근대 축구를 한국에 전파한 것은 1882년(고종 19년) 인천항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Flying Fish)호 승무원들'이라고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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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t의 원유를 실을 수 있는 유조선 C.CHAMPION호가 22일 오전 인천대교를 통과하고 있다. 이 배는 인천항 북항 SK인천석유화학 부두에서 출항했으며, 원유 선적을 위해 중동으로 향한다. 인천신항과 LNG부두를 제외하면 인천항에서 출항하는 모든 선박은 인천대교를 통과해야 한다. /임순석·조재현기자 sseok@kyeongin.com

당시 플라잉 피시호 함장 리처드 호스킨(R.F.Hoskyn)은 인천부 제물포 일대 해역을 조사했다. 이때 조사한 해도(海圖)는 아직 남아 있으며 영종도와 월미도 인근 해역의 깊이 등이 표기돼 있다. 이 배가 인천에 정박해 있을 때 선원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이 전해진 게 우리나라 근대 축구의 효시인 것이다.

플라잉 피시호에 의해 축구가 전해진 이듬해인 1883년 인천항은 개항을 맞았다. 부산과 원산에 이어 세 번째 개항이었다. 인천은 삼국시대부터 바다를 통해 중국과 교류했으나, 이때 개항으로 인천과 당시 우리나라는 큰 변화를 맞았다.

개항 이후 정기적으로 외국을 다니는 상선이 생겨났고, 외국인과 새로운 문물이 인천으로 몰려들었다. 모두 바닷길 항로를 통해서였다. 특히 인천은 개항 직후 교역량이 가장 많은 항만이었다.

1908년 일본인 에바라 슈이치로가 쓴 '인천개항 25년사'에는 '한국 각항 무역을 살펴보면 1893년 무역 총액은 778만8천원인데 인천은 그중 5할 1푼1리를 점하며, 부산은 2할9푼9리'라고 기록돼 있다. 이 시기 교역국은 일본, 중국,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이었다.

인천항을 통한 무역액은 계속해서 증가했으며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아일보는 1924년 3월21일자 신문에 '청도항노(로) 폐지는 인천의 중대타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에서 '인천항으로는 사활 문제라고 할만한 문제가 생기어 기점의 편리를 들어 이상의 치명상을 당했다. 이에 인천상업회의소에서는 대책 강구에 나섰다'라고 했다. 인천항과 연결된 항로가 폐지되면서 인천항에 '사활'이 걸린 문제가 생겼다고 쓴 것이다.

해방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바다를 통한 교류는 급속도로 확대됐다. 인천항은 산업화 시대에 대표 수입항만 역할을 했으며, 최근 컨테이너 항만으로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 원유와 LNG, 자동차 등은 대부분 전용선박에, 냉동·냉장화물과 의류 등은 컨테이너에 실려 운송된다.

최근 컨테이너 화물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에 따라 인천항도 컨테이너 처리량이 증가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인천항에서 유일하게 미국을 잇는 정기 컨테이너 노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사다.

현대상선 이태현 인천지사장은 "정기 컨테이너 노선 서비스가 많아질수록 화주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 서비스를 처음 개설한 2015년에는 수입화물밖에 없었고, 그 품목과 물량도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노선 개설 이후 오렌지와 쇠고기 등 냉동·냉장 화물이 수입됐고, 지난해부터는 일부 기업이 이 노선을 이용해 수출을 시작했다.

정기 컨테이너 노선 서비스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2년 기준 인천항을 경유하는 정기 컨테이너 항로는 38개였으나, 지난해 말 49개로 늘어났다.

역사에서 보듯 배가 다니는 길은 세계를 잇는 역할을 해왔다. 각국은 바다를 정복하기 위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왔고, 이는 '세계화'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새로운 항로 개척에 힘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초 쇄빙선 건조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해양강국의 비전은 포기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역사 이래 바다를 포기하고 강국이 된 나라는 없었다"고 말하며 최근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북극 항로 개척'을 강조했다. 북극 항로를 이용하면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기간이 크게 짧아진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임순석·조재현기자 sseo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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