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곁

권성훈

발행일 2018-02-05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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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 귤들이 저들끼리 상하는 동안



밖은 고요하고

평화롭고

무심하다



상처는

옆구리에서 나온다네, 어떤 것도.

류미야(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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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발효와 부패는 미생물의 효소가 유기물을 분해시킨다는 점에서 비슷한 과정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유용한 물질이 생기면 삶의 발효가 되고, 유해한 물질이 만들어지면 더불어 부패하며 악취를 동반한다. 이것은 무엇이 무엇을 만나는지 대상에 의해 결정되며,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요인으로서 안으로부터 작동된다. 오래 된 "상자 속 귤들이 저들끼리 상하는" 것을 보면 상큼 달콤한 저 마다의 맛과 향기는 사라지고,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댄 부피만큼 부패해 간다. 그 폐부는 썩어가도 밖은 고요함조차 모르게 '고요'하며, 평화가 사라져 '평화'로운 역설적 상태가 되는데, 심미적으로 이것을 "무심하다"라고 일컫는다. 누군가의 곁에서 무심히 호흡하는 당신도, '관심의 온도'에서 부패해가고 있다면 '어떤 것도 상처'가 되는바,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옆구리'가 아픈 연유도 거기에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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