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공동체적 기억'으로서의 1980년대 시

유성호

발행일 2018-02-09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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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정치권력 억압과
저항하는 자유의지 사이 갈등
기억이 가지는 불가피한
나르시스적 성격 뛰어 넘어
공동체적 기억과 매개 시키려는
상상력으로 1980년대 성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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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영화 '1987'이 대중들의 복합적이고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최근 우리는 1980년대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장(場)이 형성되는 분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그냥 단순하게 '운동권'이라는 배타적 폄하의 명명으로 깎아내리곤 했던 이들이 얼마나 강렬한 진정성과 열망을 가지고 한 시대를 살아냈는가에 대한 실물적 경험을 치렀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 그 열망을 완전히 뒤집어서,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권력의 품으로 당당하게 흘러간 이들도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때 경험의 처연하고도 선명한 기억으로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또 견뎌가는 이들은 훨씬 더 많다. 소중한 젊은 날의 가치와 입장에서 한 발 물러 서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미완에 그친 그날의 경험과 기억을 자산 삼아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 점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사의 주인공들이 아닐 수 없다. 이때 우리는 급진적 민중시로 평가되곤 했던 1980년대의 시에 대해서도 재인식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최근 시단의 불구형과 편향을 생각해본다면 우리 시대의 역상(逆像)으로서 가지는 1980년대의 시적 지형은 단연 시사적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1980년대의 시적 지형은, '공동체적 기억'과 매개된 상상력을 통해 기억의 나르시시즘을 극복하고 뛰어넘었던 사회적 상상력의 역사적 흔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시의 '공동체적 기억'은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격랑의 한가운데서 발원하였다. 그것은 3·1운동과 4·19혁명을 정신사적 측면에서 이은 시민 저항 운동이었다. 그만큼 1980년대 시는 강렬한 정론성을 띠면서, 지사적 열정과 혁명적 페이소스를 결합한 목소리를 드러내게 된다. 물론 1980년대 내내 펼쳐진 이 같은 민중적 서정시 양상을 곧바로 1980년대의 총체로 볼 수는 없지만, 이러한 시에서의 사회적 상상력의 본격적 도입과 개화는 두고두고 새길 만한 것이었다. 캠퍼스 안에서 은밀하게 소통되던 것이든, 훗날 '모래시계'나 '박하사탕' 같은 영상물에서 새삼 확인한 것이든, 야만의 시대가 남긴 끔찍하고 잔혹한 폭력성을,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이들은 자신의 가장 어둑한 내면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1980년대는 부당한 정치권력의 억압과 그에 저항하는 자유 의지 사이의 치열한 갈등을 안고 펼쳐졌다. 하지만 우리가 1980년대를 기억할 때, 그 시대가 탈(脫)정치적인 대중문화가 가장 활발하게 은성한 시대이며, 프로야구와 컬러텔레비전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소비 시대를 활발하게 연 풍요의 시대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정치적 후진성과 경제적 호황이라는 이 기묘한 불균형 속에서 가장 제 물을 만난 것이 바로 이 같은 문화의 대중화 흐름이었던 것이다. 대중문화에서는 조용필의 노래와 이현세 장편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대중들의 이목을 붙들었고, 김홍신 장편소설 '인간시장', 서정윤 시집 '홀로서기' 등이 문학의 밀리언셀러 시대를 열기도 했다.

이제 피아(彼我)의 확연한 구분이 아니라 양자 간의 경계를 허무는 지적 작업이 지속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리고 상품 미학과 문화 자본의 불가항력적인 전횡에 직면한 시점에서,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개인적 인식의 단위로 단순화하고 구성하는 '개인적 기억'으로서의 퇴행적 상상력을 반성하는 확연한 역사적 사례로서 1980년대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기억이 가지는 불가피한 나르시스적 성격을 뛰어넘어 그것을 '공동체적 기억'과 매개시키는 상상력을 독려하는 자료로서 1980년대를 성찰해야 한다. 또한 왜곡된 근대의 절정인 파시즘과 외세의 개입 그리고 자본의 활력이 결합하여 빚어낸 저 1980년대의 화려한 외관을 심층에서부터 비판하고 대안적 사유를 진행했던 창작 주체들의 진정성과 언어들을, 그 자체로 우리 시의 중요한 한 국면을 담당한 역사적 실례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삶 안팎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억압적 요소들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가진 소중한 '공동체적 기억'을 시사적인 항체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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