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 칼럼]"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방선거 앞두고 후보자 서로 잘났다고 야단
국민위해 결정적 순간 희생할 각오 돼 있는지
"정치판에 방해"… 떠나려는자 오히려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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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영국인들의 가슴을 적셔 온 희생정신의 상징 언어다. 주인공은 로렌스 티투스 오츠(1880~1912). 오츠는 영국인들의 우상이 된 로버트 스콧(1868~1912)의 남극 탐험대원이었다. 로버트 스콧 탐험대는 비록 노르웨이 출신의 로알드 아문센보다 1개월 정도 늦게 남극 극점에 도달하는 바람에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영국인들에게는 이미 국가적 영웅이었다. 첫 남극 도달의 영예는 아문센이 가져갔지만 국민적 위상에서는 스콧이 뒤지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귀환하지 못하고 최후를 맞은 스콧 탐험대의 '영국 신사도적 마지막 모습'에 있었다. 미국도 1950년대 이후 남극 극점에 기지를 구축해 놓고 있는데, 그 이름이 아문센-스콧 기지다.

스콧 탐험대에서 말 관리를 맡았던 오츠는 남극점 도달 이후 귀환과정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동료들한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강력한 폭풍설에 휘말려 대원 모두가 위태로웠다. 오츠는 스콧 탐험대의 귀환에 자신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동료들을 위해 스스로 희생해야 한다고 작정했다. 탐험 대장인 스콧에게 말했다. "잠시 바깥에 나갔다 오겠습니다.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츠의 이 마지막 말은 스콧의 일기에 적혀 있었기에 세상에 알려졌다. 스콧 일행도 끝내 귀환하지 못하고 남극에서 생을 마쳤다. 안전장소에서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였다.

영국 국민들은 오츠가 스스로 탐험대에서 벗어나 목숨을 버림으로써 탐험대를 살리려 한 그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동했다. 그러면서 그 마지막 말에 담긴,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조심스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나는 틀렸으니 먼저들 가세요"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잠시 바깥에 나갔다 올 터인데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니 기다리지 말고 떠나라는 말이었다. 코끝이 찡하다. 우리는 어느 조직에 있든지 간에, 나 자신이 남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고 결론을 얻었을 경우 오츠처럼 남들을 위해 결연히 나를 희생할 각오는 되어 있는가. 그러면서 오츠처럼 나를 내세우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고 겸손한 자세로 마지막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영국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오츠의 그 마지막 말에 마음을 두는 이유는 희생정신과 그 희생조차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에 있을 터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각 정당은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셈법에 바쁘다. 정치권은 모든 정책 초점을 선거에 맞추고 있다. 후보자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내가 잘났다고 야단이다. 그 방식도 가지가지다. 정치인 중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내가 국민들의 더 나은 삶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을 위해 나를 희생할 각오는 돼 있는지 모르겠다. 결정적인 순간에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음으로 나아간 오츠처럼 할 수 있는 우리의 정치인이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이번 선거에서는 티투스 오츠와 같은 마음을 가진 정치인이 하나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우리 정치판의 행로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정계를 떠나겠다는 정치인이 하나라도 있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해서라도 정치판에 남아 있게 해야 할 터다. 국민을 볼모로 삼는 정치인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판을 언제쯤 바꿀 수 있을지. 걱정이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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