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암호화폐와 투기경제의 그늘

이재은

발행일 2018-02-08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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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회사 법정화폐 교환 보장
유가증권처럼 거래 '위험성 커'
국가재정과도 밀접 규제 불가피
젊은이들까지 뛰어들어 걱정
가난한 서민마저 일확천금 꿈꿔
정부, 실태 파악후 대책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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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수원시정연구원장
정조시대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허생전'이란 풍자소설이 있다. 주인공 허생은 남산골 오막살이에서 책만 읽고 살림엔 무심한 가난한 선비다. 삯바느질로 연명하던 아내가 가난을 이기지 못해 허생에게 '남들은 2, 3년만 책을 읽어도 과거급제해서 잘 사는데 평생 책만 읽고 있으니 어이 살아갈 셈이요'하고 푸념을 하니 책을 덮고 '10년 작정하고 책을 읽으려 했으나 7년 만에 중단하니 아깝구나' 한탄하며 집을 나선다. 허생은 장안 부자 변씨에게 금 1만냥을 빌려 전국의 과일을 모두 사들인 뒤 설 대목에 양반들에게 비싸게 팔아 큰돈을 번다. 이번엔 제주도에서 말총을 매집하니 말총으로 만든 갓 값이 뛰어 또 큰돈을 번다. 이런 식으로 돈을 벌어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고 남은 돈을 되갚는다는 줄거리다.

필자가 허생전을 새삼 떠올린 것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암호화폐 열풍에 빠져들고 있는 시대상황 때문이다. 연암의 의도가 어떠하든 허생전은 돈을 가장 쉽게 버는 방법이 투기임을 알려준다. 어떤 특정상품을 매점매석해서 시장가격을 조작할 수 있다면 누구나 큰돈을 벌 수 있다. 매점매석의 이치를 알았던 허생은 아내의 타박에 더 큰 세상을 위한 공부를 포기하고 돈벌이에 나서 시대상황을 이용해 큰돈을 벌었다. 오늘날 매점매석행위는 처벌대상이다. 그러나 현대금융자본주의에는 유가증권시장이란 합법적인 투기의 장이 있다.

요즘 암호화폐 또는 가상화폐라는 말 그대로 실체가 없는 존재가 '김치프리미엄'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화제다. IT전문가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만들어낸 암호화폐가 단기간에 수십배 폭등하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남녀노소가 달려든다는 전언이다. 규제를 둘러싸고 정책당국이 혼선을 빚는 사이에 암호화폐의 가격이 등락을 거듭하다 급락하고 있다. 누군가는 엄청난 이득을 얻고 누군가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으리라. 특히 소액의 일반대중은 손실을 입었을 확률이 더 높다. 그 사이 중개업자들은 떼돈을 벌어 사업 다각화까지 시도하고 있단다. 등록금이나 돈 빌려 뛰어든 젊은이가 없기를 바란다. 허생은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에 투기를 했지만, 실체도 없는 가상화폐에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까?

암호화폐는 위변조를 막을 수 있는 블록체인기술로 만들어내 주목을 받고 있지만, 거래중개회사가 법정화폐와의 교환을 보장하면서 유가증권처럼 거래될 뿐 위험성이 매우 큰 투기대상이다. 초기 암호화폐의 총량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어 보이고, 법정화폐와 달리 인터넷 공간에서 국제거래가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지만, 공적인 안전장치가 없다.

오늘날은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관리통화제도이지만 금본위제 시절부터 통화발행을 시장에 맡기느냐 국가가 통제하느냐를 둘러싼 숱한 논쟁이 있었다. 인터넷 거래에서 많이 유통되는 포인트제처럼 부분허용은 몰라도 국가의 화폐통제권을 무력화하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통화관리제도는 한 나라에 그치지 않고 IMF를 매개로 세계경제질서를 구축하는 핵심기제이고 조세 등 국가재정과도 밀접하기 때문에 규제가 불가피하다.

암호화폐 열풍은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참여자는 투기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투자처럼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없고, 도박처럼 큰 손이 이길 확률이 크고 푼돈은 질 확률이 크다. 그런데 대학생과 군복무중인 젊은이들까지 뛰어들고 있다니 걱정이 앞선다.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경제성장의 주요 기제는 생산력 증가 못지않게 투기요소가 컸다. 국민소득의 실질적 증가에 기여하지 않고,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가격변동만으로 이득을 얻는 거래행위는 투기다. 암호화폐 거래도 투기행위다. 가뜩이나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화로 경제구조가 취약해지고 있는데, 가난한 대중마저 일확천금을 꿈꾸며 투기에 빠져든다니 걱정이다. 투기의 끝은 거품이고 거품은 꺼진다. 정부는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책에 서둘러야 한다.

/이재은 수원시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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