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고은과 광교산

윤인수

발행일 2018-02-19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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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에 와서/…/광교의 나뭇가지가 되고 싶습니다/…/그 나뭇가지로 이듬해도/그 이듬해도 서리서리 살고 싶습니다//…/광교에 와서/…/이윽고 서해 낙조의 멍한 바다 그 어디로/다 스러져가는 긴 물이 되고 싶습니다//또한 광교에 와서/…/환한 달밤의 눈물 같은 하룻밤이 되고 싶습니다/…" 시인 고은이 2015년 2월부터 경인일보 1면에 연재한 '고은의 광교산 연작' 10편 중 첫 편, '광교산에 와서'의 일부분이다.

염태영 수원시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삼고초려로 모셔온 보물" 고은은 2013년 8월부터 수원 광교산에 새롭게 거처를 마련했다. 20여년 안성생활을 청산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테지만, 수원을 인문학 도시로 만들겠다는 염 시장의 간곡한 염원에 마음을 열었을 터이다. 시업(詩業) 말년의 결정인 만큼, 광교에서 여생을 마치는 것이 순명(順命)이라 여겼음직 하다. 시 '광교산에 와서'는 시인이 광교에 뼈를 묻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고…. 이후 고은 문학관 건립을 둘러싼 시비와 광교산 주민의 퇴거 시위 등 민망하고 고약한 사단이 있었지만, 가타부타 반응 없이 광교살이의 뚝심을 보여준 시인이다.

그랬던 시인 고은이 수원시가 마련해준 광교산 거처(문화향수의 집)를 떠날 의사를 밝혔고, 수원시는 18일 이를 수용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고은 재단 측은 "광교산 주민들의 반발로 수원시가 제공한 창작공간 거주를 부담스러워 했다"며 "시인이 더 이상 수원시에 누가 되길 원치 않는다"고 광교산 퇴거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런 이유 말고도 최근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속 'En선생'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는 난처한 사정도 광교산 시대를 정리하려는 결심을 부추기지 않았을까 싶다.

광교산을 떠난 뒤 수원에 남을 것이다 아니다 예측이 분분하지만, 이제는 시인이 진정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노벨문학상의 부담으로부터, 그를 통한 도시 마케팅으로부터, 찬양과 비난으로 그의 문학적 성취에 기대려는 무리로부터 초탈하려는 첫 시도가 광교산 시대의 정리이기를 바란다. 애초에 시인으로 광교에 왔듯이, 광교를 떠나서도 오롯이 시인으로만 남는 고은을 기대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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