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47]한국생사-5 언론사업에서 손을 떼다

4·19혁명후 사세 위축 혹독한 시련기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8-02-20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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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정축재자 1호 민심 격발
5·16 군사정권, 환수·구속 단죄
신문·방송 헌납 직후 공소 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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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사그룹은 1960년대 이후 사세가 크게 위축되는데 계기는 1960년 4·19혁명이었다. 당시 김지태는 부산지역의 부정축재자 명단 1호로 거론됐다.

부산 학생들은 김지태의 집으로 몰려가 '악질친일 재벌을 처단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지태가 1950년대 자유당 시절에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13여만 평의 농지를 편법으로 구입했는데, 이것이 부산 지역 민심을 격발시킨 것이다.

1961년 5·16군사정변과 함께 그는 단죄대상이 됐다. 군사정부가 김지태에게 탈세와 부정축재혐의로 9억2천27만환(현재 약 75억원)의 환수금을 통보했다.

이후 여러 차례 재심을 거쳐 최종 통고액은 5천457만원(현재 약 45억여원)으로 축소됐다. 김지태는 현금 4천930만원과 은행주 526만3천원으로 부정축재 환수금을 완납했다.

그럼에도 김지태의 시련은 계속됐다. 그가 부정축재처리법 위반 및 국내 재산 해외도피 등의 혐의로 1962년 3월27일에 구속된 것이다.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의 고발에 따르면 김지태가 첫째 한국생사, 조선견직 등의 수출입업무를 이용해 일본 트레이딩 오사카지점과 공모해서 미화 1만2천달러 상당의 리베이트를, 둘째 1960년 해외여행 중에는 미화 1만여 달러를 각각 빼돌렸다는 것이다.

셋째 부산시내의 농토 13만1천200평을 공문서를 위조해 부당하게 매수했으며, 넷째 1957년 조선고무의 토지와 건물을 국방부에 매각했을 때 매각대금을 시가 대비 무려 10배에 넘김으로써 국고손실을 입혔다는 것 등이다.

또 며칠 후에는 김지태의 부인도 1961년 해외여행에서 돌아올 때 6천500달러 상당의 백색 다이아몬드 7캐럿 반지 1개와 100달러짜리 독일제 카메라 1대를 세관에 신고 않고 반입해 왔다는 죄목으로 구속되는 등 김지태 부부가 함께 구속됐다.

당시 정부는 달러화 낭비를 제한하고자 장·차관급 인사들이 해외에서 하루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을 15달러로 제한했었다.

약 2개월 후 경남지구 고등군법회의에서 검찰은 김지태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김지태의 측근들은 한국생사그룹 계열의 언론사를 군사정부 측에 넘기자는 제안을 했다.

결백을 주장하며 끝까지 버틸 경우 나머지 사업들의 안위마저 걱정됐기 때문이다. 부산일보와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을 5·16재단에 넘기기로 최종결정한 직후 경남고등군재는 김지태에 대한 공소를 취하했다.

1962년 5월25일에 부산일보와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은 5·16재단으로 넘어가 이를 기본재산으로 한 5·16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가 1962년 7월14일에 새로 발족됐다.

5·16재단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을 기념하기 위해 직접 설립한 재단법인이었다.

또한 김지태는 사재를 출연해 운영하던 부일(釜日)장학회의 기본재산인 부산 시내 토지 10만평(당시 시가 8억원, 현재 600여억원)을 군대에 헌납했다.

1958년 11월에 설립된 부일장학회는 1959년부터 1962년 5·16재단에 넘어갈 때까지 부산 시내 초중고 및 대학생 1만2천364명에 총 1억7천703만여원(현재 약 140여억원)을 지급했다.

한편 김지태는 부일장학회와는 별도로 1961년부터 모교인 부산상고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김지태장학금과 백양장학금을 지급했는데 고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상고 재학시절에 백양장학생이었다.

MBC는 1980년대 초 전두환 정부의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70%의 지분이 KBS로 넘어가게 된다. 1988년 사회민주화 과정에서 KBS에 인계된 MBC 주식지분 70%로 방송문화진흥회를 새로 발족하고 나머지 MBC 주식 30%는 정수장학회가 보유하도록 했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의 '정'과 육영수의 '수'를 조합해 만든 것으로 당초 김지태가 국가(군대)에 헌납한 부일장학회를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이 사유화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지태는 5·16이후 단죄된 재벌기업가 중에서 유일하게 이중 처벌된 불운한 기업가였다. 김지태가 여타 부정축재자들에 비해 과도한 처벌을 받은 것은 1960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산 군수기지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재직할 때 김지태가 밉보였기 때문이란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당시 김지태 단죄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두지휘했던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 박용기 대령이 1964년에 김지태에 보낸 편지에 "당시 배후에서 조종한 사람들에 휩쓸린 나머지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말았다"는 참회의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김지태사장창업35년사', 149면)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 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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