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2019년은 '3·1운동 100주년' 수원기생들 만세운동을 기억하다

이동근

발행일 2018-02-27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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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박물관이동근
이동근 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
우리는 매년 3월 1일이면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의 절정이었던 3·1운동을 기억한다. 그리고 3·1운동의 아이콘이 돼 버린 유관순 누나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작 우리 고장의 3·1운동은 어떻게 전개됐는지, 우리 고장의 독립운동가들이 누구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다가오는 2019년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100년의 세월은 그렇게 쉽게 다가오는 시간이 아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지난 역사를 다시 새겨봐야 하고 지난 100년 속에서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해야 한다. 수원시는 지난 1월 '수원시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3·1운동 100주년을 함께 할 마음을 모아 행동해야 할 시점이다.

3·1운동의 가장 격렬했던 항쟁지는 바로 경기도며 그 중 수원은 대표적인 3·1운동의 만세운동 성지다. 100년 전 그날, 수원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수원기생들의 만세운동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910년대 일제의 혹독한 무단통치와 식민지 지배체제는 강력한 민족적 저항에 부딪혔다. 민중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일제의 침략과 수탈에 저항했다. 3·1운동은 자주독립을 위해 전 민족이 항쟁한 민족해방운동이었다. 서울에서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함께 파고다 공원에서 일어난 3월 1일의 만세운동 물결은 천민으로 여겨졌던 기생들의 마음속에도 불을 지폈다.

수원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저녁 화홍문 방화수류정(용두각) 부근에서 수백명이 만세를 부르면서 시작됐다. 3월 29일 수원기생들이 일제 침탈로 무너져버린 화성행궁 봉수당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봉수당은 자혜의원으로 변해 기생들의 위생검사를 시행했고 그날은 위생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수원예기조합 기생 33명은 김향화(金香花)의 주도 아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세운동을 벌였다. 바로 앞에 수원경찰서가 있어 일제의 헌병 경찰이 총칼로 무장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일제 경찰들은 당황했고 수원지역민들은 기생들의 만세운동에 고무돼 그날 저녁 시장상인들의 철시투쟁과 함께 거센 만세운동을 이어갔다.

수원기생들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수원예기조합의 맏언니, 당시 스물셋의 김향화는 일제 경찰에 붙잡혀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다. 형을 마치기 1개월 전 10월 27일 가출옥한그녀는 수원에 돌아와선 행적을 알 수 없게된다. 김향화는 1897년 7월 16일 생으로, 본명은 순이(順伊)였다. 향화는 기명으로 꽃과 같이 아름다운 그녀의 명성에 걸맞은 이름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녀는 언제 수원기생이 됐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갸름한 얼굴에 살짝 주근깨가 있고 크지 않은 중간키에 성격이 순했으며 검무와 승무에 능했다. 가사·시조·경성잡가 등 노래를 잘하는 기생이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수원예기조합 기생들은 '조선미인보감(1918)'에 프로필 사진으로 남아 있다. 유일하게 남겨진 한장의 사진 속에서 순한 기생이 아닌 강인한 조선의 한 백성이었던 김향화가 느껴진다.

수원기생들의 3·1운동은 관기의 후예와 전통예능의 전수자로서 보여준 민족적 항쟁이었고 일제의 강압적인 기생제도와 식민통제에 대한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오늘날 기생의 존재는 옛날 이야기로 묻혀버렸지만 기생도 우리 민족의 일원이었다. 이 여성들의 재능은 대중예술이란 장르로 계승됐고 당시 식민지 권력에 대항하며 보여줬던 수원기생들의 민족적 의로움은 오늘의 교육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향화는 2009년 4월 국가보훈처로부터 대통령표창을 받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김향화의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표창장과 훈장메달은 수원박물관 근대 인물 한 코너에 전시돼 있다. 비록 천민으로 취급받았던 기생들이었지만 수원기생 김향화는 환생해 우리들 가슴 속에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을 아로새겨준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자유'와 '평등'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다. 이것이 다가오는 3·1운동 100주년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 역사는 민초들이 만들어가며 기록되고,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를 열어가는 바탕이자 희망이 된다.

/이동근 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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