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그들, 3·1운동을 말하다!·(1)미서훈 독립운동가]백년을 잃어버린 '이름 없는 영웅들'

공지영 기자

발행일 2018-02-21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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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3주년 공로 인정 1만명뿐
유공자 발굴 기관도 변변치 않아
후손이 직접 취재·증명해야할판
지자체가 나서도 신원확인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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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1 만세운동'이 99주년을 맞는다.

1919년 3월 1일 대한의 백성들이 광장에서 목숨을 걸고 쏟아낸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을 기리기 위해 3·1절이 국경일로 제정됐지만 100주년을 한 해 앞둔 지금, 현실은 어떤가. 광복 73주년이 지나도록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은 이가 1만여 명에 불과하다.

매년 광복절에 '건국절' 논란이 반복되며 해묵은 이념전쟁이 벌어지고 위안부, 강제징용 등 일제의 직접적 피해자들은 일본의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여러 차례 독립운동가 예우를 철저히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고 숨은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 조사기관조차 변변치 않은 게 현실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직접 옛 문헌을 취재하고 증명해야 예우받는 상황인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체포된 후 심문과정에서 사망하거나 사망 직전에 이른 독립운동가는 판결문이나 수형자 카드 같은 문헌기록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해 독립운동을 증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서울을 벗어난 지역의 경우라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적 무대였던 경기도와 인천도 예외는 아니다. 전국적인 만세운동이었던 만큼 지역마다 목숨을 걸고 만세운동에 참여하거나 이후 적극적인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상당하지만 발굴은 쉽지 않다.

기초자치단체에서 지속적인 예산과 인력 투입이 어렵고, 막상 시도한다 해도 제한적인 정보공개와 개인정보보호법 등 실정법에 가로막혀 신원 확인조차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화성시가 2013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와 손잡고 지역 내 숨겨진 독립운동의 흔적을 조사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4명의 독립운동가가 독립유공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

'제암리 학살 사건' 정도만 알려진 화성은 전국에서 가장 격동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전국에서 제일 먼저 일본 순사를 처단한 차경규 선생과 만세운동 선두에 서 일제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 홍면옥 선생, 문맹 퇴치를 위해 교육에 헌신한 변기재 선생 등이 지역의 노력으로 발굴됐지만, 아직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해 '미서훈 독립운동가'로 남았다.

부끄럽지 않은 100주년을 맞기 위해, 경인일보는 역사 속에 숨겨진 독립운동가를 집중 조명한다. 아울러 경인지역에서 뜨겁게 펼쳐졌던 3·1 운동의 흔적을 찾아 보도한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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