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한끼줍쇼', 환대의 정치경제학

권경우

발행일 2018-02-23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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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공동체의 아름다움' 강조 사회적 역할 수행
문 안 열고 못 여는 사람·생존 전쟁터 미 귀환자
이들이야말로 정말 따뜻한 밥한끼 함께할 사람들

권경우1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고 썼다. 이 말이 새삼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시대 밥벌이가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가치와 의미를 설명하더라도 결국 밥벌이라는 궁극적인 조건 앞에서는 버티지 못한다. 작가는 이 밥벌이의 어쩔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밥벌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인간으로서 다른 차원의 삶은 요원해진다.

jtbc에서 수요일 밤 방영되는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은 우리가 매일 먹고 살아가는 '밥'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흥미를 유발한다. 처음에는 현대인의 주거형태와 생활방식을 고려해서 이렇게까지 프로그램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낯선 이들에게 자신의 집을 개방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1인 가구와 혼밥족이 트렌드가 되는 사회에서 함께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신선한 발상은 되겠지만 지속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끼줍쇼'는 대박 프로그램이 되었다.

프로그램 구성은 강호동과 이경규라는 대중에게 익숙한 연예인을 고정으로 하고 매회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운 파트너들과 함께 초인종을 눌러 한 끼를 요청하는 것이다. 초반에 선정 지역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소개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이해와 공감을 끌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목동 아파트촌이나 신림동 고시촌 등이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은 초인종을 누르는 데서 시작된다. 저녁 시간에 낯선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일은 근래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 시간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사실 방문(訪問)은 아름다운 일이다. 방문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서로 친해진다. 서로의 삶의 조건을 알게 되고 나아가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누군가의 집이나 작업실 등을 방문하는 것은 서로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애정의 표현이며 나의 시간과 일상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산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방문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방문도 원하지 않는다. 서로 방문하는 일이 사라져 버렸다.

'한끼줍쇼' 프로그램은 트렌드와 의미를 모두 충족시키는 정말 괜찮은 기획이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에서 담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한 끼'의 성공을 위해서 수많은 부재와 거절이 있다. 현관문을 열고 낯선 사람을 맞아들이는 이들이 있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타인을 초대할 엄두나 상황을 갖지 못한다. 무엇보다 텔레비전 화면에 보이지 않는 현실은 따로 있다. 저녁 8시가 넘도록 집에 돌아올 수 없는 이들의 삶. 저녁 식사 한 끼가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행복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잃어버린 소중한 일상일 수도 있다.

여성학자 김현경은 "환대(hospitality)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라면서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것은 그를 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것, 그를 향한 적대를 거두어 들이고 그에게 접근을 허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한끼줍쇼' 프로그램은 환대의 문제와 연결된다. 환대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인정과 배제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환대를 통한 밥상공동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함으로써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문제는 이 환대의 장에 처음부터 초대받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는 일이다. 문을 열지 않거나 문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생존이라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정말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나눠야 할 이들이다.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커뮤니티 혹은 공동체 담론이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근간을 이루는 것은 비교적 단순하다.

임마누엘 칸트의 말이다. "지구는 둥글고 그 표면적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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