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진 칼럼]부부공존의 미학

홍창진

발행일 2018-03-27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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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뭔가 바라는건 욕심
'너 아니면 죽는다'는 식의
환상과 기대 갖기 때문에 불행
배우자와 가까워질 수 있는 말은
"나 요즘 왜 이렇게 힘들지?"
별것 아니지만 상대방 마음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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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신부로 살면서 결혼을 시킨 커플만 수십 쌍이다. 혼배성사 날짜가 잡히면 식전에 신랑을 불러 슬쩍 물어본다. "왜 이 여자랑 결혼할 생각을 했습니까?" 대부분 "잘은 모르겠는데 결혼은 이 여자랑 해야 한다는 감이 오더라고요"하고 대답한다. 신부에게도 따로 물어본다. "왜 하필 이 남자입니까?" 이런저런 대답이 나오지만 공통적으로 "다른 건 모르겠는데, 저한테 잘해줘요"라는 말이 나온다.

그럴 때 속으로 '결혼하고 조만간 찾아오겠구나' 생각한다. 그 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십중팔구 못 살겠다며 찾아온다. 주례할 때 AS를 보증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여자가 미쳤나 봐요. 집안일은 하나도 안 하고 친구만 만나러 다녀요."

"매일 회사로 데리러 오던 남편이 요새는 전화도 잘 안 받아요."

"결혼 전이랑 너무 달라요. 뭐든 다 해줄 것처럼 굴더니, 사사건건 간섭만 해요."

해결될 문제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결혼은 AS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애초에 고장 난 물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하자가 있었으니 되돌려 놔봐야 고물이다. 고칠래야 고칠 수 없다는 걸 모르고 어떻게든 바꿔보겠다고 아우성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착각해서 결혼을 하고 망각해서 재혼을 한다. 좀 부실해도 고쳐 쓰면 될 거라는 착각 때문에 결혼하고, 결코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해서 재혼을 한다.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이혼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최소한 그놈 때문에, 그녀 때문에 내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거다.

결혼해서 한집에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인생은 각자 살아야 한다. 그걸 알고 자기 주도적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결혼해서 사는 게 좀 힘들더라도 배우자 탓을 하지 않는다. 결혼 역시 자기 선택으로 결정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애걸복걸해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 애걸복걸을 들어준 것은 결국 자신이 아닌가? 그를 선택한 것이 나이니, 그와 함께 사는 것도 내 몫이다.

물론 속된 말로 '사기 결혼'을 당해 도저히 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결혼 생활의 문제는 배우자에게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배우자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 상대로 인해 이익을 보려는 마음,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생각 때문에 힘든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상대를 바꾸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결혼 생활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 그중에 결혼의 인연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니 결혼을 한 배 탄 것에 비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한 배를 탄 것이 아니라 함께 갈 배 한 척이 내 곁에 온 것뿐이다. 그럴 거면 뭣하러 결혼하냐고?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 망망대해를 홀로 헤쳐가야 하는 외로운 인생에서 같은 곳을 향할 이웃 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거친 풍랑을 만나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이웃 배가 옆에 있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결혼이 딱 그렇다. 배우자를 그저 옆에 있는 배이려니 하면 훨씬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상대에게 뭔가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기대와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힘들어 해봤자 자기만 손해지 변하는 것은 없다. 반대로 기대와 욕심을 버리면 상대방이 해주는 아주 작은 것에도 고맙고 정이 생겨난다. 죽도록 사랑해야 하고, 너 아니면 죽는다는 식의 환상과 기대를 갖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이렇게 얘기해 놓고 나니 결혼생활을 마치 수행자의 삶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배우자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말 한마디를 알려 드리겠다.

" 나 요즘 왜 이렇게 힘들지?"

별것 아닌 말이지만, 어설픈 훈계 혹은 위로보다는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말이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다.

/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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