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연인]봄

권성훈

발행일 2018-03-05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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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시장기//

죽은 나무도 생피 붙을 듯

죄스런 봄날//

피여, 피여

파아랗게 얼어붙은

물고기의 피//

새로 한 번만

몸을 풀어라//

새로 한 번만

미쳐라 달쳐라.

허영자(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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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봄비는 얼어붙은 땅의 심장을 뛰게 한다. 봄비를 흡수하는 땅에서 지난겨울 멈춰있던 '지하의 피돌기'가 시작된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시장기"를 하늘도 아는지 땅을 적시면서 "죽은 나무도 생피 붙을 듯" 생기를 돋아나게 한다. 이렇게 순화하는 자연의 힘으로 진화하는 인간을 얼마나 먹였던가. 자연 없이 살 수 없는 우리는 자연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허락 없이 빼앗았나. 그러면서 무조건적으로 자연을 수유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은 한 없이 초라해진다. 보라, 이 '죄스런 봄날' 비가 내린다. 강가에도 "파아랗게 얼어붙은 물고기의 피"를 한 방울씩 '피여, 피여' 피어나게 한다. 우리도 봄비와 같이 '사랑과 실천'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풀고, 경직된 세상을 향해 미치도록 '미쳐라' 뜨겁게 '달쳐라' 이것이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첫 계명'일지도 모른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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