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8]선박건조 기술자(上)

수많은 사연 이어붙인 작은 배, 물위에 띄우다

김주엽 기자

발행일 2018-03-08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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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연중기획 바다이야기 조선소
지난달 26일 인천 동구 화수부두에 있는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160t급 예인선의 뒤집어진 선미 부분에서 한 근로자가 강판과 강판을 이어붙이는 전기용접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설계에 따라 절단된 철판조각 정밀하게 용접… 따로 조립한 선수와 합쳐 제작
1990년대 초반까지 인근 마을 먹여살린 조선소, 중국시장 성장 탓 상황 기울어
후임 기술자 구하기 힘들어져 "인천에서도 배 만들었다는 사실 기억해 줬으면"


'상해로 가는 배가 떠난다.

저음의 기적, 그 여운을 길게 남기고 

유랑과 추방과 망명의 많은 목숨을 싣고 떠나는 배다. 

어제는 Hongkong, 오늘은 Chemulpo, 또 내일은 Yokohama로, 

세계를 유랑하는 코스모폴리탄'

-박팔양 '인천항'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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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라는 단어는 '사람이나 짐 따위를 싣고 물 위로 떠다니도록 나무나 쇠로 만든 물건'이라는 사전적인 뜻이 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이러한 자연환경 때문에 예로부터 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다. 지금은 대형 조선소가 있는 경남 거제시나 울산 등이 '조선업 도시'로 유명하지만, 인천도 1908년 지역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가 설립된 이후 많게는 20여 개의 조선소가 배를 만들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에는 인천에서 소형 잠수함까지 건조된 적이 있다.

지난달 26일 인천 동구 화수부두에 있는 (주)디에이치조선을 찾았다. 인천 지역에는 현재 6개의 조선소가 있는데 모두 만석부두와 화수부두에 있다.

인천 연중기획 바다이야기 조선소12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지난 겨울 바닷가 조선소 야외 작업장에서 한파를 몸으로 이겨내며 작업했던 근로자들이 다소 풀린 날씨 속에 배 선체를 만들기 위한 용접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이곳에서 만난 김광국(51)씨는 20여 년 전 고향인 강원도 정선에서 인천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김씨는 "삼촌이 인천에 가면 배를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올라왔다"며 "지금은 '인천에 무슨 조선소가 있나'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예전에는 인천에도 유명한 조선소가 꽤 많았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160t급 예인선의 바닥 부분을 조립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인천 지역 한 예선업체에서 주문한 것이다. 디에이치조선 전성선(58) 대표는 "수십억 원이 넘는 선박을 미리 만들어 놓고 팔리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주문이 들어오면, 본격적인 설계 작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설계 이후에는 도면에 따라 강판을 절단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과거에는 조선소 한쪽에서 산소절단기를 이용해 강판을 잘라냈지만, 10여 년 전부터는 외부 공장에서 가져온다고 한다.

이렇게 가져온 강판은 용접을 통해 이어 붙이게 된다. 이날 김씨는 뒤집어진 선체 바닥 부분에 올라가 용접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김씨는 "선박은 수백 개의 조각을 하나하나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며 "배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용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무리 설계가 좋아도 용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머리카락 한 올만큼 구멍이 생긴다면 그 배는 금방 가라앉고 만다"고 덧붙였다.

4명의 직원은 엔진 등 선박 부품이 들어갈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부에서 발생하는 먼지를 빼내기 위해 환풍기를 계속 돌리고 있지만, 작업장에 들어가니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는 지경이었다.

김씨는 "여름이면 배 안의 온도가 48도까지 올라간다"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러한 작업을 마치고 나면 용접한 부분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지금은 그라인더(연삭기)를 이용해 이른바 '용접똥(슬래그)'을 잘라내지만, 예전에는 망치로 두드려 하나씩 떨어트렸다.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박 건조 수요가 많았던 1990년대 초반까지 조선소가 밀집된 이 동네 주민들의 겨울철 주 수입원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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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이치조선 전성선(58) 대표가 뒤집어진 채 건조 중인 배 밑바닥에서 작업 중인 근로자에게 작업설명을 하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동구 만석동에서 30년 이상 거주한 여순초(60·여)씨도 겨울이면 항상 조선소에서 일했다. 여씨는 "겨울이면 어민들은 배를 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조선소에서는 겨울이 되면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를 냈다"고 말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힘이 많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여씨와 같은 여성들도 조선소에서 일을 많이 했다. 배를 한 척 만들려면 40~50명의 근로자가 필요한데 그중에서 10명 정도는 여자였다는 게 여씨의 설명이다.

여씨는 "한겨울에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무척 힘이 들었다"고 했다. "조선소는 바닷가에 있었기 때문에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선체를 잘못 만지면 철판에 손이 달라붙을 정도였다"고도 했다.

용접을 마친 선체는 따로 조립한 선수 부분과 합쳐져 바다로 나가게 된다. 김씨는 "예전에는 눈으로 확인했지만, 요즘에는 선박 안전을 위해 X-레이 검사도 실시한다"고 했다.

지금은 대부분 선박이 강화플라스틱(FRP)이나 철재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19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목선을 만드는 사람이 많았다. 나무를 이용해 배를 만드는 사람을 '배 목수'라고 불렀는데 바닷가 주변 지역에는 마을마다 꼭 한 명 이상의 배 목수가 있었다는 게 주민들 설명이다.

만석동에 사는 정연관(70)씨는 "1980년대 중반까지 만석부두 입구에는 배 목수에게 나무를 파는 목재 야적장이 있었다"며 "배 목수들은 이곳에서 나무를 받아 부두 근처에서 커다란 배를 만들었다"고 했다.

또 "그 시절에는 배를 만들면 동네 사람들이 구경도 하고 때로는 농담도 하면서 참도 같이 나눠 먹었다. 배를 진수하는 날이면 다들 모여서 축하해주고,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거들어주기도 했다"고 했다.

현재 대형 조선소들이 수주의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면서 디에이치조선 같은 소형 조선소도 설 자리를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김씨는 "대형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려면 작은 배들이 달라붙어 근로자들을 실어주고, 필요한 장비도 날라줬다"며 "대형 선박 건조가 주춤하다 보니 작은 배에 대한 수요도 없어졌다"고 했다.

이어 "소규모 바지선 등 그나마 소형 조선소에서 만들던 배들도 전부 중국 쪽으로 넘어갔다"고 덧붙였다.

조선소들은 몸집을 점점 줄여나가고 있다. 디에이치조선도 상시 근무하는 현장 직원은 5명뿐이고, 선박을 수주받으면 일용직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조선소에서 일하겠다는 기술자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 대표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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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에 따라 강판을 절단해 배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수많은 용접작업 등을 거쳐 형체를 드러내고 있는 160t급 예인선.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전 대표는 "우리 현장에서 가장 어린 기술자가 48살이다. 바다에 있는 배를 육지로 올리는 작업을 하는 기술자는 일흔 살이 훌쩍 넘었는데도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아직도 일하고 있다"고 했다.

배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먼지로 인한 민원 때문에 주거 지역과 가까운 조선소는 더 힘들어지고 있다.

김씨는 "인천 지역에서 배를 만드는 것은 어쩌면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다"면서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삼성이나 현대 등 대형 회사뿐만 아니라 우리처럼 작은 곳에서도 배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기억해줬으면 한다. 이것이 마지막 바람"이라고 말하며 씁쓸해했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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