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 소리가 딱따그르르
숲의 고요를 맑게 깨우는 것은
고요가 소리에게 환하게 길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고요가 제 몸을
짜릿짜릿하게 빌려주기 때문이다.
딱따구리 소리가 또 한 번 딱따그르르
숲 전체를 두루 울릴 수 있는 것은
숲의 나무와 이파리와 공기와 햇살
숲을 지나는 계곡의 물소리까지가 서로
딱,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김선태(1960~) |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
'딱따구리 소리'를 봄의 언어라고 하자. '딱따그르르' 숲의 고요를 맑게 깨우고 있지 않은가. 이럴 때 '고요가 소리에게 환하게 길을 내어주고' 그 언어는 우리에게 봄을 감각하게 만든다. 고요가 이 땅의 모든 만물들 가운데 '짜릿짜릿하게 몸을 빌려주듯' 우리의 소리도 몸의 고요한 침묵을 깨고 그 안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와' '아' '야' '오' '우'하는 감탄사란 딱따구리의 '딱따그르르'와 유의한 기의를 가진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봄이 오는 숲속에서 "딱따구리 소리가 또 한 번 딱따그르르/숲 전체를 두루 울릴 수 있는 것"과 같이, 봄의 자장에 놓인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와' '아' '야' '오' '우'가 저절로 나온다. 그것은 나무와 이파리, 공기와 햇살, 계곡 물소리 할 것 없이 '딱, 하나' 되어 터져 나오는 3월의 끝자락에 있기 때문이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저작권자 ⓒ 경인일보 (www.kyeongi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