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호 칼럼]미래준비, 반복되는 위기의 고리 끊기

이명호

발행일 2018-04-03 제2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댓글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미래에 도전 없으면 지배 당해
구글·3M 등 혁신적 기업들
자율적 과제 수행 요구 이유는
탐색의 중요성 인정하기 때문
정부·기업, 지금과 다른 새로운것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이명호 칼럼1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기시감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보는 대상이나, 처음 겪는 일을 마치 이전에 보았거나 경험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기시감보다는 '이미 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데자뷔라는 영화 제목이 더 익숙할 수도 있겠다.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금호타이어 매각 등 이전에 봤던 현상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느낌이다. 1997년 IMF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10여년 만에 또 위기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 3년 연속 돈을 벌어도 빌린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이 외부감사 대상기업의 14.2%에 달한다. 한계기업의 대출 비중에서 대기업이 65.7%에 달하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음에도 정부나 채권단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대마불사 좀비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IMF 위기는 국내 대기업들의 과잉 중복투자에 따른 구조조정 위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부동산의 과잉 신용을 담보로 한 중복소비에 따른 거품붕괴 위기였다. 그럼 현재의 위기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미래 준비의 위기라고 본다. 그 동안 우리 산업은 선진국의 산업을 모방해서 저렴한 생산비용으로 경쟁하는 방식이었다. 관리를 잘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기업은 경쟁자보다 싼 값에 물건을 더 팔 수 있어서 수익도 늘고, 임금도 오르는 성공의 과실을 맛보게 된다. 이 방식은 모방이 쉬워서 오래 가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일본이 서양에서 배우고, 한국이 일본에서 배우고, 중국이 한국에서 배우고, 베트남이 중국에서 배우는, 물이 흐르듯이 주역이 바뀌는 구조이다. 성공의 과실도 넘어가고 위기도 반복된다.

반복되는 위기를 끊고, 성공의 과실도 계속 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미래에 대한 준비와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우리 기업들은 성공의 과실을 따는 동안 투자를 기피하고,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깎고, 사내 보유금을 늘려왔다. 반복되는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대응이라는 소극적 대응의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무엇에 투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의 원천인 모방의 속도를 높여서 품질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선진국과 같은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더욱이 스마트 폰과 반도체, 자동차 등 일부 제품은 품질도 앞서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모방할 새로운 제품이 눈에 띄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는 자부심이 자만이었다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산업 인터넷, 빅데이터, 스마트 팩토리, 가상물리시스템, 블록체인 등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과 신제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제품만 쫓다가, 제품이 나오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기나긴 연구개발의 과정, 즉 미래 준비와 투자를 놓친 것이다.

우리는 현재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았다. 미래는 선진국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만을 생각해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어제, 오늘과 같은 내일이 아닌 달라질 수 있는 내일,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미래 준비가 시작된다. 그것은 현재의 강점이 향후에도 유효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의 제기이다. 의문의 제기는 불안이 아니고, 불확실성에 대한 호기심이다. 새롭게 펼쳐질 미래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영역이다. 밀림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탐색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가능성과 위험이 공존하는 과정이다. 현재의 이익을 놓고 다투는 과정이 아니고 미래의 이익을 위해 타협하고, 협력하고, 인내하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미래에 대한 도전이 없으면 미래에 지배당하게 된다. 현재의 길을 쉬지 않고 달려간다고 미래에 도달하지 않는다. 구글, 3M 등 많은 혁신적인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자율적 과제 수행을 요구하는 이유는 바로 탐색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기업은 여유를 가지고 엉뚱한 상상을 하고, 지금과 다른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북돋아 주어야 한다.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이명호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