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겨진 숙제, 우리들의 몫

이경호

발행일 2018-04-18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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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날에 떠난 세 송이 꽃.
이들의 고결한 희생이
단순한 사고로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선배로서, 동료로서 부끄럽지 않은
소방인이 될 것을 약속한다.

정복사진5
이경호 수원소방서장
봄이 오는 길목에서, 아직 채 피우지도 못한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들이 졌다.

지난달 30일 충남 아산에서 여성소방관 1명과 임용을 2주 앞둔 여성교육생 2명이 유기견 포획 활동 중 교통사고로 순직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사고'였다. 예고 없이 날아든 비보에 동료들은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난해 말 갓 결혼해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었을 故 김신형 소방교와 이제 곧 꿈에 그리던 소방관이 된다는 기쁨에 하루하루를 설렘으로 채우고 있었을 故 김은영, 故 문새미 교육생. 도로 위 유기견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이들은 25톤 화물차가 소방펌프차를 들이받아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행정안전부는 현장 활동(직무 행위) 중 숨진 세 명의 고인(故人)에게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하고, 故 김신형 소방교를 1계급 특진함과 동시에 교육생 2명을 순직으로 인정하기 위해 소급 임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혹여 이들이 가는 길이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도록,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제 소방이, 국민이, 그리고 이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전국 소방관서에서 출동한 80만여건의 구조출동 중 절반을 넘는 42만여건이 동물구조, 문 개방 등 생활안전 신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의 경우 전체 구조건수의 60% 이상이 "비둘기의 사체를 처리해달라" "비밀번호를 잊어버렸으니 문을 열어달라" 등의 비긴급 생활민원이었다. 2011년 관련법 개정으로 비긴급 출동을 거절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지만, 세부 기준이 애매하다는 이유로 실제 적용에는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에 경기도재난안전본부는 지난달 3월 초 전국 최초로 생활안전분야 세부 출동 기준을 마련하고 3월 9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실제 이 기준을 적용한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 119생활안전신고 처리결과를 보면 전체 신고접수 1천830건 중 466건(25.5%)은 소방대원이나 의용소방대원이 출동했지만, 1천140건(62.3%)은 비긴급 신고로 분류돼 시·군 등 유관기관에 이첩하고, 224건(12.2%)은 자체 처리하도록 유도했다.

소방청에서도 지난달 28일 동물 사체 처리, 문 개방 등 비긴급 신고에 대해서는 소방대원이 출동을 거절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상황별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 이 세부 기준은 현장대원의 의견수렴 회의를 거쳐 전국 시·도별 특성에 맞게 시행될 예정이다. 이로써 현장대원들은 소방 본연의 임무인 긴급 구조 활동에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최근 10년간 순직한 우리나라 소방관 51명. 그리움으로 가슴에 묻었지만 동료들의 숭고한 희생을 우리 모두는 기억할 것이다.

2018년 눈부신 봄날에, 진한 잔향을 남기고 떠난 세 송이의 꽃. 이들의 고결한 희생이 단순한 사고로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남았다. 선배로서, 동료로서 부끄럽지 않은 소방인이 될 것을 이들 앞에 약속한다.

또 보다 안전한 환경 속에서, 우리 대원들이 소방관으로서의 사명감과 자긍심을 갖고 현장 활동에 임할 수 있도록 비긴급 상황에서의 신고는 자제해 주실 것을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부탁드린다.

/이경호 수원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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