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고서산책']고서 수집의 '즐고움'

조성면

발행일 2018-04-09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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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진계유(陳繼儒) 말대로
독서와 고서 수집은
"아무리 오랫동안 계속해도
싫증나지 않는 일"로서
헤어 나오기 싫은 즐거운 일이다.


전문가 조성면2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
옛날 학자들의 꿈은 자기 책을 내는 것과 장서를 갖추는 일이었다. 책(冊)은 죽간이나 나무 등을 실이나 가죽으로 꿰맨 것을 형상화한 글자이고, 책을 뜻하는 불어 리브르(livre)는 권위 있는 고전을 지칭하거나 금화의 단위로 쓰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던 단어였다. 그런 만큼 유럽에서 중세와 근대 초까지만 해도 책은 귀족들의 품위와 교양의 상징이었다. 한국은 책을 아끼고 숭상하던 책의 나라였다. 1970년대 들어 한국은 전집류 같은 월부 책들이 호황을 누렸다. 보릿고개를 넘기고 고도성장을 거듭하자 너 나 할 것 없이 거실의 벽면을 책으로 채우는 것이 대유행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서점과 인터넷과 공공 도서관이 책으로 차고 넘치건만, 독서의 열기는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책이 흔해지고 독서량은 늘었으나 독서가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독서 인구는 줄어들었다. SNS나 웹 검색을 통해서 고전과 베스트셀러에 대해 얻은 인스턴스 지식이 진중한 진짜 독서를 대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공위성이 높이 뜰수록 문화의 수준은 떨어진다는 말대로 출판부수가 늘어나면 날수록 읽는 사람만 읽고 독서 인구는 적어지는 독서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 같다. 독자가 떠난 빈터를 '엄지족'과 '스몸비'들이 차지하고 있다.

시대환경이나 시장 여건에 따라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외곽으로 흘러나오는 책들이 바로 중고도서와 고서 시장을 형성한다. 주머니가 가벼웠던 문학청년기와 대학원생 시절 우리 동기들의 일과는 도서관을 드나들며 시간 날 때마다 헌책방들을 순례하는 일이었다. 시장 밖으로 밀려난 헌책방의 책더미들 속에서 우리는 전공서적이나 논문과 강의를 통해서 얻을 수 없는 살아있는 지식과 귀중한 절판본을 염가에 만나는 기쁨을 누렸으며, 옛 책을 통해서 그 시대의 지적 흐름과 문화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면 옛 책과 재고도서와 고서의 차이는 무엇인가. 고서연구회의 정의에 따르면, 고서는 1959년 이전에 출판된 책들을 말한다. 반면 재고는 팔리지 못하고 창고에 쌓여있던 책을, 옛 책은 과거에 나온 오래된 책을 지칭하는 편의상의 용어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인류역사에서 책이 등장하자 숱한 독서가와 장서가들 그리고 일화들이 생겨났다. 가령 명대 주대소(朱大韶)라는 애서가는 책사랑이 지나쳐 고서와 자신의 애첩(愛妾)을 주저 없이 바꾸는 엽기적이고 황당한 선택을 했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독서가 사고의 힘과 언어능력을 길러주고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며 지식과 정보를 얻고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나만의 고서 컬렉션을 갖는 것도 독서 못지않은 보람과 기쁨이 있다.

그러면 고서 수집을 위해서는 어떤 요령, 어떤 비법이 있는가. 수집에도 오계명이 있다. 첫째는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 둘째는 분명한 목표의식과 방향, 셋째는 자문을 받을 만할 멘토 혹은 신뢰할만한 단골 고서점의 확보, 넷째는 필요한 경우의 망설임 없는 투자, 다섯째는 지극한 정성이다. 여기에 더해 적절한 행운과 재수도 따라줘야 한다.

물론 수집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시간과 경제적 소모가 분명하고, 퀴퀴한 냄새를 맡고 책 먼지를 먹는 일을 피할 수 없으며 집안의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 수집가들치고 부부관계가 원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그래도 명대의 학자 진계유(陳繼儒) 말대로 독서와 고서 수집은 "아무리 오랫동안 계속해도 싫증나지 않는 일"로서 헤어 나오기 싫은 즐거운 일이다. 폐일언하면, 독서와 고서 수집은 즐겁지만 고통도 뒤따르는 괴로운 즐거움―곧 '즐고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삶의 풍요를 위해 한번 가져볼만한 취미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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