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2]인천의 해원양성 교육기관

인천서 첫 출항한 해원양성소, 해양도시 자존심 잇는 해사고

윤설아 기자

발행일 2018-04-05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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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인천해사고등학교 학생들이 선박조종시뮬레이션실에서 가상 화물선을 인천항으로 인항하는 선박 운항 실습을 하고 있다. /국립인천해사고 제공

일제에 의해 1919년 교육기관 설립
1947년엔 국립해양대학 잠깐 둥지
1981년 34년만에 선원학교 문열어
1993년 국립인천해사고로 개편

바로 취업시장에 투입되는 학생들
인프라 부족 탓 타지서 승선 실습
졸업후엔 업체 몰린 부산으로 떠나
지역 전문가 배출, 국가 관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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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이 돼 맘껏 세계를 누비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요."

지난 3월23일 오전 10시께 인천 중구 북성동 국립인천해사고등학교. 실제 화물선 기관실처럼 꾸며진 선박 조종 시뮬레이션 교실에서 해사고 3학년 학생 4명이 배를 운항하는 실습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눈·비가 내리거나 다른 선박이 가까이 다가오고, 파도가 크게 몰아치는 등 다양한 가상 상황이 모니터에 연출됐다. 학생들은 선장, 항해사, 조타수가 된 것처럼 바다를 항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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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해사고등학교 전경.

"충돌 위험, 스타보드(Starboard) 10도(오른쪽으로 10도 타격)."

'Hanjin Korea'라는 가상 화물선이 배에 급격히 다가오자 조타수가 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선장은 키(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장치)를 오른쪽으로 급하게 틀었다.

항해사 역시 선박이 제 각도로 피했는지 끝까지 확인했다.

선박 충돌 사고는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이날 선장을 맡은 이대영(3학년)군은 "실제 선박을 운항하는 것처럼 임하면 나중에 배를 안정적으로 잘 조종하는 선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졸업 후 해기사 4급을 취득해 화물선, 무역선 등 선박 인력에 즉각 투입된다. 일부 학생은 이미 해운사 장학생으로 뽑혀 마지막 학기 실습을 마치면 바로 취업해 배를 몰기도 한다.

흥아해운 장학생으로 뽑힌 김민성(3학년)군은 "전 세계를 누비며 세계 여행을 많이 하는 선장이 되는 게 꿈"이라며 웃어 보였다.

해사고 훈련
인천해사고 학생들이 학교 내 수영장에서 해상훈련을 받고 있다. /국립인천해사고 제공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데 필요한 자질 중 하나는 협동심이다. 인천해사고 교훈도 '협동'이다. 이 때문인지 인천해사고의 전신인 인천선원학교 출신은 선장, 기관사, 선원, 회사원 등 각자 다른 위치에서도 지금까지 동문회를 이끌어오는 등 남다른 우애를 자랑한다.

인천선원학교는 턱없이 부족했던 선원 수급을 위해 정부가 1979년 설립해 준비 기간을 거친 뒤 1981년 개교했다. 1기부터 3기까지는 1년제로 운영됐으며 4기부터 3년제로 변경됐다. 12기부터 현재 인천해사고등학교 모습을 갖췄다.

100여 명이던 선원학교 학생 정원은 현재 360여 명까지 늘었다.

선원은 선내에서 생활하면서 해상에 도사리는 각종 위험 속에 인명과 재화를 관리해야 해 군대처럼 엄격한 조직체계를 갖춘 게 특징이다. 인천선원학교 역시 군 조직과 비슷했다.

주말에 자유롭게 학교 밖을 나가기도 어려웠던 데다 취침 점호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날 밤을 꼴딱 새울 정도로 군기가 셌다는 게 졸업생들 이야기다.

인천선원학교를 2기로 졸업하고 10여 년 선원 생활을 한 임용선(53)씨는 "분위기가 거의 군대와 같았다. 주말에도 자유로운 출입이 통제돼 2m 높이의 담장을 통해 월미유원지에 놀러 온 외부 여성과 대화나 교제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학교 특성상 강한 체력과 인내심을 기르는 훈련이나 강도가 센 해난 훈련을 해 심신이 여린 학생들은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학생들은 학교 일에 동원되기도 했다. 현재 학생들이 쓰고 있는 운동장과 조경수는 선원학교 1~3기 학생들이 조성한 것이다. 선원 수급 부족으로 학생들은 바로 취업 시장에 투입됐다.

이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정규 고등학교에 가지 못했던 학생들이 주로 입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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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인천선원학교 학생들이 해변에서 해상 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 /국립인천해사고 제공

인천선원학교 이전 인천에는 일제가 설립한 '해원양성소(조선총독부 체신국 해원양성소 인천지사)'가 있었다.

1845년 영국이 항해사와 기관사의 자격 조건으로 승선 경력 이외에 국가시험을 거쳐 해기사면장(海技士免狀)을 발급하기 시작하자 다른 나라에서도 차례로 해기사 제도를 시행했고 우리나라에도 1913년 해기사 면허제도가 도입됐다.

근대적인 선원 양성기관이 설립된 것은 인천의 해원양성소가 최초였다. 이는 현재 부산에 있는 한국해양대학교의 전신이다.

1919년 7월 해원양성소를 세운 일제는 선원이 부족하자 신입생에게 징집 유예 등 혜택을 주며 선원을 뽑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해운 업계 일손이 부족하자 월급을 많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까다로운 시험·체격 기준과 일제에 대한 반발 등의 이유로 정작 선원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해원양성소는 인천항을 모항으로 한 '광제호(光濟號)'를 실습선으로 썼다. 고종 황제는 1903년 열강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 군함인 양무호(揚武號)를 일본에서 도입했는데 유지비가 많이 들고 효율성이 떨어져 군함으로 쓰지 못했다.

이에 골머리를 앓던 대한제국 정부가 새로운 군함 발주를 계획해 일본으로부터 1904년 도입한 것이 광제호였다. 광제호는 무선 전신시설을 처음 장치한 군함이었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통감부 정치가 시작되면서 광제호는 군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해원양성소 실습선으로 쓰였다.

당시 해원양성소를 나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렵고 비참한 상황에서 근무했다. 1926년 12월22일자 동아일보 '취직난 중에도 해원은 유부족'이라는 기사를 보면 '취직난은 누구나 동감하지만 해원계는 반대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조선 유일 해원양성소가 인천이며 당시 졸업생은 거의 조선 청년으로 근실하고도 박봉을 감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원양성소는 1927년 부산 진해로 옮겨져 진해고등해원양성소로 개편됐으며, 1946년 진해해양대학이 됐다. 같은 해 인천에도 인천해양대학이 설립됐다.

이후 진해해양대학이 1947년 1월 인천으로 이전하면서 인천해양대학과 병합해 '국립해양대학'이 됐지만, 고작 4개월만인 5월 다시 군산으로 옮겨졌다. 이후 '해양도시' 인천에는 인천선원학교가 설립되는 30년 동안이나 선원 양성 전문기관이 없었다.

해양도시이자 수도권의 관문인 인천은 최초의 철도대학이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905년 5월 인천 제물포에 개교한 철도이원양성소(鐵道吏員養成所)마저 1907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인천은 철도 전문인 양성의 맥도 끊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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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인천선원학교 학생들이 실제 선박 기관으로 실습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국립인천해사고 제공

선원의 업무는 선박을 안전하게 운항해 여객과 화물을 보호·관리하는 것이다. 선박의 대형화·다양화와 기술 발달로 오늘날 선박 운항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을 필요로 한다.

유능한 선원을 갖추는 것이 해양도시의 기본이며 곧 해양 경쟁력인 이유다. 그러나 인천은 해양 교육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부산은 국립한국해양대, 국립부경대 등이 있으나 인천에는 인천해사고와 인천해양과학고 등 중등교육기관이 전부다. 교육 환경도 열악하다. 학생들은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 있는 실습선을 이용해 6개월간 승선 실습을 마친 뒤, 민간 해운회사에서 상선을 이용해 남은 6개월을 채우는 상황이다.

굵직한 해운 회사도 부산에 몰려 있다 보니 해사고 졸업생의 80%는 부산 소재 해운 회사에 취직한다.

여기에 인천은 월미도 인근 지역을 개발할 경우 민간투자 등을 위해 해사고 이전이 필요하다는 주민·정치계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해기사에 대한 대체복무 특혜까지 없어질 위기에 처해 해원 양성 교육의 위축이 우려된다. 인천이 해양도시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해운 교육계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명식 해사고 교장은 "해운 산업이 지금은 위축됐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 발전을 견인한 공이 크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는 중요한 산업"이라며 "해양 분야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들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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