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선비 같은 정치인, 어디 없소

정진오

발행일 2018-04-05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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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과장 없이 '보이는 그대로'
솔직하게 화폭에 담은 조선 초상화가
지방선거 맞아 '선비정신' 생각하게 해
정직한 후보 당선돼 청량제 역할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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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1958~2009)은 피부가 하얗게 변하는 백반증을 앓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이 백인이 되기를 원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피부 미백 치료를 받았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는데 피부가 하얘진 게 실제로는 피부병이었던 거다. 피부 백반증, 흔하지 않아 우리와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흥미롭게도 조선시대 그림에서 찾을 수가 있다. 조선 영조 때 문신 송창명의 초상화. 이 초상화는 피부과 의사인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이 독일의 학술지에 발표해 세계 최초의 백반증 그림으로 인정받았다. 이 초상화를 보면 이마와 왼쪽 뺨이 위아래로 하얗다. 왼쪽 귀도 그렇다. 얼굴 피부와 선명히 대비되어 흉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보이는 그대로 그리겠다는 화가의 작가정신을 송창명이 받아들였기에 세계 최초의 백반증 그림은 가능했을 터이다.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이 최근에 펴낸 책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에 나온다.

조선의 초상화는 서양이나 중국, 일본의 초상화와 다른 게 한 가지 있다. '털끝 하나 머리털 한 가닥이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다른 사람'이라던 초상화 원칙에 따른 세밀함이다.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에는 오른쪽 눈썹 위 아마에 난 아주 작은 사마귀까지 그려져 있다. 임금의 얼굴에 감히 혹을 그려 넣은 거다. 문신 홍진의 초상화는 주먹만하게 부풀어 오른 코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문신 서직수의 초상화에서는 한 모공에서 털이 세 가닥 나온 것까지 그렸다. 순조 때 무신 신홍주의 초상에는 턱수염 속에 숨은 혹까지 묘사했다. 천연두를 앓아 생긴 마맛자국도 조선의 초상화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초상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을 비롯한 세력가들의 독점물이다. 권세를 쥔 모델이 동의하지 않고서는 흠이 될 게 뻔한 얼굴의 티를 그대로 그릴 수는 없었을 터이다. 초상화의 피부병 흔적은 조선의 것에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특질이라고 이성낙 명예총장은 말한다. 이는 서양은 물론이고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조선의 초상화가 가식이나 과장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 온 것은 정직함으로 대표되는 선비정신의 발현이라고 이 명예총장은 얘기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자신에게 부정적 이미지로 작동할 단점까지도 그대로 남기는 것에 기꺼이 동의했다. 그 점이 서양이나 중국, 일본과 다른 우리 선비들의 정신세계라는 게 이 명예총장의 해석이다. 너무나 솔직했던 조선시대 초상화들을 보고 있자니, 사진만 찍으면 얼굴을 밝게 하고 점을 빼놓고 하여 너무나도 치열하게 '뽀샵'에 매달리는 요즘 세태가 극명하게 대비되어 겹쳐진다. 어느새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뽀샵의 달인들이 돼 있다. 조선을 관통해 온 초상화 정신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정직함의 결정체인 선비정신을 6·13 지방선거를 맞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누구에게 물어도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집단은 정치권이다. 수사나 재판을 받는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기 일쑤다. 증거가 다 드러났는데도 일단 부인하고 본다. 거짓말의 달인들이다. 국회의원의 특권이 사회문제로 떠오를 때마다 그들은 누구도 예외 없이 다 내려놓겠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때뿐이다. 불체포특권을 비롯하여 국회의원의 특권은 여전하다. 지금 6·13 선거판에서도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후보자들은 넘쳐난다. 그러나 명함 속 사진은 여지없이 뽀샵이다. 예년과는 달리 이번 선거에서는 정말 솔직하고 정직한 정치인이 한 사람만이라도 당선된다면 우리 정치판은 그로 인하여 청량제가 될 게 분명하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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