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식의 다시 보는 한국 프로야구 명장면·2]상대 혼 빼앗는 MBC 청룡의 발야구

대포 없이 송곳 질주로 KS 진출

경인일보

발행일 2018-04-10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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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이해창 등 도루 10걸 5명
내야수플라이만으로 홈 파고들어
기동력 활용 전후기 통합승률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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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MBC 청룡은 1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타자가 단 한 명도 없었을 뿐 아니라,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한 선수조차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도루 10걸 안에 무려 다섯 명의 선수들(김재박, 이해창, 이광은, 이종도, 김인식)이 포함되어 있었고, 청룡이 기댈 수 있는 득점루트는 그들의 다리 뿐이었다.

특히 발야구를 이끌었던 김재박과 이해창의 위력은 단지 도루의 개수만으로 표현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둘은 숱한 단타를 2루타로, 또 2루타를 3루타로 바꾸어냈고, 조금 깊숙한 내야수 플라이만으로도 3루에서 홈으로 파고드는 명장면을 연출하곤 하는 송곳 같은 선수들이었다.

9월 14일 경기에서의 대역전극도 그 해 팀의 1,2번으로 나란히 출격해 상대 팀의 넋을 빼놓았던 숱한 명장면들의 한 단면이었다.

그리고 나아졌다고는 해도 아직은 조직력이 엉성했던 그 시절 대포보다 더 효과적인 무기는 송곳이었다. 타구를 쫓아가기에도 급급했던 수비수들에게 주자들의 발놀림까지 묶으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고, 생각지도 않은 타이밍에 도루나 리터치를 허용한 수비수들은 제풀에 무너지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차원 높은 기동력을 활용해 상대팀 수비진의 빈틈을 집요하게 후벼 파는 움직임으로 청룡은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전후기 통합승률 1위로 기록될 수 있었다.

물론 그해의 청룡은 끝이 좋지 않았다. 단지 한국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즈에 1무 4패로 철저히 무너지며 준우승에 머물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1차전과 2차전에 김동엽 감독은 끊임없이 교체신호를 보내는 선발투수 오영일과 유종겸을 7점과 8점을 내주도록 방치한 채 완투시키는 심술을 부렸다.

선수들도 태업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승리에 대한 집념을 포기해버리는 한국시리즈 사상 최악의 졸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뒷날 밝혀진 것은 후기리그 막바지에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해 내걸었던 우승보너스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시작된 갈등 탓에 이미 한국시리즈가 시작되기도 전에 MBC의 선수와 감독과 구단이 산산이 쪼개져 버렸더라는 것이었다.

그 해의 준우승을 끝으로 청룡은 다시는 포스트시즌에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팀이 돼 버리고 만다. 한국시리즈에서 노출되었던 불화 탓에 김동엽 감독이 다시 반 년 만에 옷을 벗었고, 선수들 내부에서도 팀의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빚으며 가지고 있던 역량을 흐트러뜨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결국 청룡은 한국야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던 팀이었지만, 그 주도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자기혁신을 이룰 여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빠른 팀이긴 했지만, 가장 빠르지도 못하면서 파괴력도 가지지 못한 애매한 팀컬러로 하위권을 전전했고, 결국 1989년을 끝으로 간판을 내리게 된다.

만년 꼴찌 팀 삼미 슈퍼스타즈와 비교해보더라도, 요즘 MBC 청룡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차라리 인상적인 꼴찌조차 해본 적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LG가 청룡을 인수해 트윈스로 새출발하던 첫해 우승을 이루어내며 청룡 팬들의 아쉬움마저 흡수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를 더 꼽는다면, 청룡이 정말 청룡다운 모습을 보였던 유일한 해였던 1983년에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며 기억 속에서마저 '철인 장명부'와 '해태왕조의 개막'에 밀려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강함보다는 세밀함', 그래서 '한 베이스 더 가고 30㎝를 더 빠르게 선점하는 야구'를 통해 세계의 중심으로 진입한 한국야구의 한 뿌리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는 한 번 쯤 되새겨볼 만하다.

1983년은 장명부가 427.1이닝을 던져 30승을 거둔 해였고, 해태 타이거즈가 첫 우승에 성공하며 왕조시대의 첫걸음을 시작한 해다.

하지만 또 하나 그 해의 프로야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해에 MBC 청룡이 '야구에서 점수를 내는 것은 빠른 공과 강한 방망이가 아니라 지능적이고 역동적인 인간의 발'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는 점이다.

 

/김은식 야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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