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별이 지다

이영재

발행일 2018-04-18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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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 데스먼드는 텅 빈 저택에 유폐된 여왕처럼 살아간다. 이미 대중의 갈채도 환호도 모두 사라졌다. 화려했던 옛날은 그저 덧없이 허공에 흩어지는 연기 같은 것. 영화가 제작된 지 60여 년이 흘렀지만 데스먼드역을 맡은 글로리아 스완슨의 소름 돋는 연기, 특히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그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우리 기억에 남아있다. 빌리 와일더가 영화 '선셋 대로(Sunset Blvd.)'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천하를 호령한 대 스타라도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 흘러간 물로 다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평범한 자연의 섭리였을 것이다. 할리우드까지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도 대 여배우를 갖고 있다. 최은희다.

젊어서 과부가 된 어머니와 죽은 아버지의 친구간 애틋한 사랑을 다룬 주요섭의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발표된 것은 1935년 일제 치하때였다. 과부의 사랑이 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거리도 아닌 시절이었다. 주요섭은 당대 소설가 중 여성 심리를 묘사하는데 단연 일인자였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1961년 이 작품은 동명으로 영화화됐다. 감독 신상옥, 어머니 역에 최은희, 촬영은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24번 1 정준식의 집에서 진행됐다. 방화수류정 등 수원이 배경이었다. 영화는 큰 성공을 거뒀다. 원작도 좋았지만 그래도 흥행의 1등 공신은 당대 최고의 배우 최은희가 큰 역할을 했다. 신상옥·최은희 콤비의 필모그래피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성춘향'·'빨간 마후라'와 함께 언제나 맨 앞을 장식한다.

최은희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1960년대를 전후로 엄앵란, 김지미와 함께 한국 영화 황금기의 스크린을 누빈 톱스타였다. 78년 신상옥 감독과 차례로 홍콩에서 납치돼 북한에 머물다 8년 만에 탈출하는 등 '삶 그 자체가 영화'였을 정도로 극적인 삶을 살았던 배우. 생전에 늘 "되돌아보면 내 삶은 기적의 연속이었다"고 말한 최은희는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생전에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3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언제나 큰 별로 살았던 최은희. 그 별이 졌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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