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칼럼]남북정상회담에 부쳐

이영재

발행일 2018-04-24 제23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北 선언, 핵 실험 중지일뿐 포기는 아냐
완성된 핵무기 쥐고 테이블에 앉을 수도
전세계 생중계 '김정은 쇼 타임' 될까 걱정
文대통령 '완전 폐기' 당당하게 주장해야

2018042301001965600097771
이영재 논설실장
평창 올림픽이 끝난 지 석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 기간 남북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이 일어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실험과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를 거듭한 끝에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 단추가 내 손 안에 있다"며 미국을 협박한 게 지난 연말이다. 주기적으로 터지는 '○월 위기설'로 B-1 등 미국의 전략 자산이 전개돼 한반도의 긴장이 극에 달했던 것도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올림픽 개막식에 김여정이 전격 방문한 후 상황이 급변했다. 우리 특사단이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하고 돌아왔다. 여기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가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해 김정은을 만나기도 했다.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속도가 너무 빨라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런 속도로 달려가도 되는지, 그러다 갑작스러운 돌발 사태로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이 될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던 중 지난 토요일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기습적으로 선언하고 나왔다. 2013년 3월 제시했던 경제·핵 병진 노선을 공식 폐기하는 대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 노선을 내놓은 것이다. 그동안 우리와 미국이 요구한 것은 핵무기를 포함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였다. 하지만 이날 선언으로 시야가 밝아진 게 아니라 오히려 안갯속으로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번 선언은 핵과 ICBM 실험만 중지키로 했을 뿐, 완전한 핵 포기를 언급한 것은 아니다. "핵무기가 완성됐으니 그동안 실험장비들은 이제 모두 폐기한다"로 들릴 뿐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의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이번 발표는 핵 실험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지 핵 선제 사용이나 핵기술 이전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아니며,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실험의 중지'일 뿐 '생산의 중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27일 남북 정상 회담에서는 종전 선언으로 평화체제 방안을 논의한다고 한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1991년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 기본합의서에는 '정전 상태의 평화 상태로의 전환'을 명시한 바 있다. 2007년 노무현 김정일의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한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합의는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이 뿐인가. 김정은 체제인 2012년 2·29 합의에서도 핵실험 중단과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에 동의해 놓고 두달도 지나지 않은 4월13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제 북한은 이미 완성했을지도 모를 핵무기를 쥐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과연 우리는 여기에 대적할 협상 카드를 쥐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모든 것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 판문점이라는 분단의 현장에서 만난다는 역사적 의미에 너무 함몰돼서도 안된다. 이번 회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고 한다. 자칫 '김정은 쇼 타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북한은 2008년 6월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전 세계로 송출하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번 회담에 온 국민이 기대에 부풀어 있다. 언론도 장밋빛 전망이다. 불안한 정전 체제를 청산하고 남북이 평화롭게 살자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많은 국민들이 겉과 속이 다른 북한의 전략에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을 안심시킬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동안 있었던 두 번의 정상회담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문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를 거울삼아 세 번째 정상회담에 임해 주길 바란다.

/이영재 논설실장

이영재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