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리 곁의 정신건강

홍승철

발행일 2018-05-04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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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철
홍승철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수원시성인정신건강복지센터장
우울해서 아무 일도 못하고 잠이 많아져서 학업도 포기한 26세 여자환자가 내게 진료를 받으러 왔다. 엄마는 하던 일도 그만두고 딸의 치료를 위해서 발 벗고 나섰다. 어떻게 학업을 다시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어떤 치료가 효과적일까?

술을 먹으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63세 남자환자가 가족에 의해 진료를 받으러 왔다. 지난 30년간 자기 사업을 일구는 데는 성공했지만 지금은 몸과 마음에 병이 와서 가족의 짐이 되어 버렸다. 지속된 음주로 알코올성 치매 초기 증상도 나타나고 있다. 아직도 그의 삶은 한참인데 말이다. 주변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챙겨야 된다고 생각한 것은 친했던 친구가 군대 제대 후 급성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해버리고부터이다. 건강하였고 남을 잘 웃겼던 친구가 갑자기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려버렸다. 그때가 1986년도 내가 정신과 전공의 수련을 받고 있던 때이다. 좀 더 그 친구를 자주 만났더라면 그래서 치료를 권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했더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지금도 드는 많은 생각과 후회는 소용이 없다.

그 이후 주변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체크 하는 버릇이 직업의식을 넘어서 습관처럼 몸에 배었다. 그래서 아내가 우울해할 때 빨리 알아차리고 대처할 수 있었다. 정신과적 문제는 나와 가족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나타날 수 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 타인의 가족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정신질환은 신체 질환처럼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이다. 2016년 우리나라 정신질환 실태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은 25.4%(男 28.8%, 女 21.9%)로,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중년여성에게는 우울증이 흔하고, 정신없이 앞뒤 보지 않고 달린 아버지들에게는 불안 및 공황장애가 나타난다. 음주 관련 문제는 이미 심각하고, 젊은 여성들에게서는 식이장애가 자주 나타난다. 아동들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가 흔하고 노인들에서는 치매가 급증하고 있다. 정신분열병으로 알려진 조현병은 인구 100명당 1명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우리 가족이고 우리의 이웃이며 사회 구성원이다.

이전 농경사회에서는 이들을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보호하여 책임지며 사는 것이 가능했다면, 복잡한 현대에서는 가족이 그 역할을 수행하거나 책임지기 어려운 실정이기에 나에게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거나 사회가 책임지고 치료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현실이다.

2017년 11월 피터 싱어 교수(71세,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는 한 칼럼 기고문에서 우울증과 불안을 제거하면 불행을 20% 줄이는 반면, 빈곤을 제거하면 불행을 5%만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영국에서 실시한 연구결과에서는 정부가 정신건강, 신체건강, 실업, 빈곤에 대처하기 위해 각각 지출해야 할 금액을 조사하였고, 정신건강에 투자하는 것이 불행을 줄이고 행복을 증진하는 데 18배나 더 경제적이라고 보고하였다.

정신과 의사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공감되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도 2017년 정신보건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정신건강 시스템 구축에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차원의 제도 마련이나 예산 확대도 중요하지만, 국민인 우리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 우리 스스로가 정신건강에 대한 주체가 되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수원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난 20여 년 간 정신건강사업을 선도적으로 이끌어 왔고, 그 결실로서 2016년 정신건강수도를 선포하였다. 이후 정신건강수도의 역할 수행과 수원 시민에게 전문적이고 접근성 있는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을 위해 마음건강치유센터(가칭)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 이 센터의 건립은 수원시민의 오랜 바람으로 시민 모두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쾌적한 치유 환경을 제공하여 명실상부한 정신건강 메카가 될 것이다. 생애주기별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함은 물론, 센터 건물 자체를 지역주민에 개방하여 지역주민과 함께 상생하는 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으로 소통을 통하여 정신건강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자 계획하고 있다 하니 참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

/홍승철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수원시성인정신건강복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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