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칼럼]작가 김사량을 생각한다

방민호

발행일 2018-05-01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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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범으로 日서 보여주기식 체포
해방 되자 북한으로 돌아갔고
6·25 참전중 9·28 수복때 전사
왜 덧없이 희생되어야 했던가?
참으로 지혜가 필요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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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작가 김사량의 본명은 김시창이다. 그는 1914년에 평양의 잘 사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공부도 잘한 사람이었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제국대학에 독문학을 공부하려 유학까지 했다.

본디 잘 사는 사람은 래디컬한 생각을 갖기 어렵건만 그는 달랐던 것 같다. 고등보통 1학년때 광주학생의거가 일어나자 시위에 참가해서 일본 관헌에게 쫓겨다녔고 5년 졸업반 때는 일본 장교의 학교 배속에 반대하는 동맹휴교에 참가하여 끝내 졸업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렸다. 손창섭 장편소설 '낙서족' 주인공이 그러하듯이 김사량도 반도 안에서는 공부하기 어렵게 되자 일본에 밀항해서 공부를 계속하고자 한다. 안우식이 쓴 '김사량 평전'에 따르면 그의 형이 이미 도쿄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부산에까지 갔는데 거기서 특고들 눈에 띄어 경찰서까지 끌려갔다 도망 나왔고 형이 소식을 알고 보내준 학생복이며 학생증 위조한 것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시작하여 동인 그룹에서 창작으로 나아갔고 도쿄 제대에 들어가서도 동인 활동을 했다.

물론 일본어를 통한 문학 창작활동이었다. 그러나 김사량은 확실히 달랐던 것이 이른바 세틀먼트 운동이라 해서 빈민 지역에 몸소 들어가 거주하면서 그들의 삶과 의식을 개량하는, 일종의 도시 '나로드니키'로 활동하다 다시 경찰에 체포된다. 이로써 김사량은 3개월 구류 처분되었고 뿐만 아니라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인물이 되었다. 읽은지 오래되어 명확하지 않으나 대학교 재학 중에 '조선예술좌' 같은 연극운동단체에 적을 붙인 것도 그로 하여금 시련의 길을 걷게 한 일로 남았다.

세틀먼트 운동의 경험을 소설로 옮긴 것이 바로 일본어로 쓴 단편소설 '빛 속으로', 그에게 아쿠타가와 상 후보의 '영예'를 안겨 준 작품이다.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 두 개의 언어로 창작활동을 했는데, 이 세대의 작가들에게 언어 선택이라는 문제는 지금 생각하기보다 아주 미묘하고도 어려운 문제였다. 고등보통 시절에 중국 유학을 꿈꾸었고 나아가 미국으로 가 영어소설을 쓸 생각을 했던 그이니만큼 일본을 괄호에 넣고자 하는 반제국주의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일본에 유학하고 아쿠타가와 상 같은 제도 문단권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그의 문학 언어 선택은, 일본인들에게 조선인들의 삶의 실상을 제대로 알린다는 명분 아래 일본어 쪽에 더 많이 기울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작이라 할 만한 '천마'라는 일본어 소설이 나왔고 이것이 한국어로도 남겨지지 않은 것을 무척 아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 국면이다. 1941년 벽두부터 조선사상범 예방 구금령이라는 것이 발동되자 사상범 전력이 있던 김사량은 일본에서 본때 보여주기 격으로 체포되었다 부친의 도움으로 간신히 풀려난다. 이 법령은 전두환 정부 시절의 사회안전법 같은 것으로 이미 치안유지법 사범, 즉 오늘날의 국가보안법 사범이 되었던 자는 다시 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는 '추측'만으로 잡아 가둘 수 있는 이상한 법이었으며, 이것이 당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작가 김남천의 단편소설 '등불'에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일제 말기 체제 아래서 김사량은 3,4년 '보호색'을 띠고 체제에 동화될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았지만, 1945년이 되자 중국으로 파견된 틈에 냅다 탈출의 길을 선택, 연안으로 들어가 저항군이 된다.

이런 그에게 해방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요즈음 문학인들의 1945년 8·15 이후에 관해 생각한다. 그는 해방이 되자 북한으로 '돌아갔고' 6·25 전쟁 중에 참전, 남쪽으로 내려왔다 9·28 수복의 와중에 전사해 버리고 만다. 그는 정말 사회주의자였을까? 왜 그는 북한을 선택했던 것일까? 조국의 현실에 괴로워하는 양심가였던 그는 왜 그렇게 덧없이 희생되어야 했던가? 참으로, 지혜가 필요한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달라 보일 뿐, 험한 세상은 지식을 쌓은 사람들에게 냉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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