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6]인천과 포구(下)

썰물처럼 빠져나간 화려했던 시절… 물밑에서 모습 드러내는 뱃사람 자부심

정운 기자

발행일 2018-05-03 제15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연중기획 바다이야기 북성포구
북성포구가 포함된 열십(十)자 모양의 '십자수로'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했다. '十'자 안쪽 중에 위쪽 부분에 북성포구가 위치해 있으며, 십자 모양 넘어 위편에 화수부두가 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이 바다 일부를 매립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전국 유일 '선상 생선시장' 파시 여는 북성포구
수십년 단골 젓새우 등 사러 경기·서울서 발길
화수·만석부두 1970~1980년대 '인천 경제 중심'
기능 연안부두로 통합… 어시장·횟집 크게줄어
30여척으로 줄어든 유선·어선들만 그자리 지켜


2018050201000183200006856
인천 중구 북성포구의 파시가 올해에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파시(波市)는 바다나 부두에 있는 배 위에서 펼쳐지는 생선 시장을 말한다.

전국에서 파시가 열리는 곳은 북성포구가 유일하다. 전라도 등지에서 북성포구의 파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꾸준히 찾고 있기도 하다.

지난달 27일 낮 12시 인천 중구의 작은 포구인 북성포구. 파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등지에서 온 이들은 개인용 손수레를 끌거나 손에 양동이, 배낭, 스티로폼 상자 등을 들고 있다.

젓새우 등 수산물을 담기 위한 통을 준비해온 것이다. 많은 이가 젓갈을 만들기 위해 이곳에서 젓새우를 산다고 했다.

이들은 배가 들어오자 한 줄로 서서 조심스럽게 배에 올라섰다. 선원들은 갓 잡아온 새우와 각종 생선을 배 위에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가장 많이 잡힌 것은 젓새우. 젓새우 한 말의 가격은 1만5천원, 두 말을 사면 2만5천원이다.

배 한 척이 포구에 접안할 때마다 20여명의 손님이 배에 올라섰고, 선원들의 손도 바빠졌다. 선원은 쉴 새 없이 새우젓을 통에 수북이 담아 손님에게 건넸다.

연중기획 바다이야기 만석부두
만석부두의 모습. 이 부두는 과거 작약도와 영종도 등지를 오가는 여객선이 다녔으나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어선만 부두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인천 계양구에 사는 권근아(45·여)씨는 친척과 함께 북성포구에 처음 왔다고 했다. 권씨는 "이곳이 새우가 싱싱하고 저렴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며 "배에서 직접 판매하니까 믿을 수 있고 다른 데에 비해 30% 이상 저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온 김춘자(72·여)씨는 젓새우 다섯 말을 샀다. 손수레와 배낭에 젓새우를 꽉꽉 담았다. 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새우젓을 담가서 자식들에게 주려고 한다. 김장 때 쓸 것"이라며 "10여 년 전부터 1년에 1~2차례는 이곳에 와서 새우를 산다. 다른 곳은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더 사고 싶어도 들고 가기가 무거워 못 산다. 마음 같아서는 생선도 더 사고 싶지만 참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각 배에서 잡아온 새우는 150㎏ 안팎. 어민들은 시간이 지나면 어획량이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선원 박윤수(65)씨는 "이날 잡은 것은 새우가 대부분이고 간자미와 같은 생선은 양이 많지 않았다"며 "5월에는 어획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성포구 파시는 역사가 길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어민들의 이야기다. 올해 파시는 4월 중순에 시작했다. 물때에 맞춰서 열리기 때문에 1주일에 2~3일 정도 파시가 열린다. 토요일에는 200명 이상이 찾는다고 한다.

북성포구는 '똥마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1960년대 실향민들이 이곳에 나무로 집을 짓고 살았고, 공동화장실에서 나온 대변이 밀물을 만나 떠다닌 모습 때문이라고 한다.

연중기획 바다이야기 화수부두
화수부두는 과거 인천의 유명한 수산시장이었다. 1970년대 신문을 보면 인천지역 수산물 가격의 등락을 보도할 때 화수부두 젓갈시장 새우젓 시세 등을 활용했다. /경인일보 DB

정남훈(69) 북성포구어민회장은 "예전에는 고기도 많았고, 전량을 선상에서 판매했다"며 "어민들이 나이가 들면서 많이 떠났고, 어획량까지 줄면서 점차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곳을 찾는 분들은 20년 이상 단골이 많다. 경기도 포천이나 서울에 사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소설가 양진채는 단편소설 '패루 위 고래'에서 "포구로 들어온 배는 일곱 척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포구이기는 했지만 골씨를 따라 배가 들어오는 광경. 싱싱한 생물을 배에서 바로 흥정해서 사는 모습 등을 구경하는 동안 못마땅한 모습이 사라졌다. (중략) 문득 똥바다요? 하던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동네의 바다가 똥바다로 불렸다는 걸 아는 사람 정도는 돼야 이 포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북성포구의 선상 판매만큼 인근에 있는 화수부두와 만석부두도 과거 대표적인 항구 역할을 했다.

만석부두에는 영종도와 작약도 행 여객선이 다녔다.

동아일보는 1976년 1월1일자 신문에서 "인천항 만석부두에서 영종도로 가는 여객선 선실은 세모(歲暮)를 맞아 섬 아낙네들이 사서 가지고 가는 짐으로 가득하다"며 "희뿌연 창으로 비치는 인천 앞바다에는 이따금 닻을 내린 육중한 화물선이 보일 뿐 겨울 바다는 쓸쓸하다. 느릿한 여객선. 십리 길에 25분이나 걸린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선착장 시설이 낙후돼 1976년 폐쇄되고, 그 기능이 연안부두로 통합됐다.

연중기획 바다이야기 북성포구
지난달 27일 인천 중구 북성포구에 접안한 선박 위에서 선원들이 젓새우 등을 판매하고 있는 모습. 이날 서울과 인천 각지에서 젓새우 등을 사기 위해 50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 갓 잡아온 수산물을 선상에서 판매하는 곳은 전국에서 북성포구가 유일하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만석부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인천 동구 만석동 일대에 자리한 주꾸미 음식점이다.

이곳에 주꾸미 집이 많은 이유는 1970~80년대 만석부두의 어선들이 주꾸미를 많이 잡았기 때문이다. 이 일대에서 '주꾸미 축제'가 열리기도 했으나,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축제도 사라졌다.

화수부두는 인천의 대표적인 어시장이 있었던 곳이다. 매일경제는 1974년 11월5일자 기사에서 "김장철을 앞두고 인천시의 새우젓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5일 인천 화수부두 젓갈시장에는 지난해 드럼당 1만7천원 정도 하던 새우젓이 2만1천원에서 2만3천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새우젓 가격이 크게 오른 이유는 올해 새우가 잘 안 잡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82년부터 인천 동구 화수동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이관국(67)씨는 "이 동네가 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되게 잘나갔다. 우스갯소리로 지나가는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인천 경제의 중심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안강망을 하는 고깃배가 많았는데 보름에 한 번씩 이들이 부두에 돌아오면 음식점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연안부두가 생기고, 이곳에서 잡히는 고기가 줄면서 어민이 급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2018050201000183200006852
북성포구와 만석·화수부두 어민들이 소속돼 있는 연안어촌계 강평규(68) 계장은 "북성포구와 만석부두, 화수부두의 시작은 전쟁 때 피난 온 실향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일대 갯벌에서 바지락 등을 캐는 분들 중심으로 1966년 어촌계가 생겨났다"며 "한때 이 일대 배들은 유선과 어선 모두 100척에 달했지만, 지금은 30여 척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바다가 매립되고,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어민 수가 줄어들었다"며 "그래도 포구와 부두가 있는 것은 어민들이 지금까지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인천의 어업을 지키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정운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