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진 칼럼]진정한 친구

홍창진

발행일 2018-05-08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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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 줄 수 있는 사람에 집중하면
되레 집착 때문에 목 졸릴 수 있어
어느 특정한 관계 유지하기 보다
다방면의 여러 친구 사귀는게
외로움 더는데 더 많은 도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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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사람이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왕따로 사는 건 흡사 죽음을 미리 체험하는 것 같은 공포를 준다. 그만큼 사람에게 친구는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요즘 세상에서 자신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다가 배신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거다.

한번은 방송 출연 중에 제일 친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때 누구에게 보낼까 잠시 망설이다가 한 동창 신부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동창 신부가 과연 진정한 친구일까? 과연 친구라는 존재가 내 마음을 100퍼센트 알아주고, 힘들 때 정말 위로가 되어줄까?

그렇다고 그 동창 신부가 친구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진정한' 친구라고 했을 때 기대하는 것이 허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나는 진정한 친구를 갈구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엔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 내 마음을 뼛속까지 알아주는 친구는 없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오해다.

친구가 내 외로움을 해결해 주는 존재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각자 짊어져야 할 외로움의 몫이 있고, 그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나 사람은 그렇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위안 삼아 묵묵히 자기 인생을 걸어갈 뿐이다. 그 이상을 바란다면 욕심이다. 그리고 그 욕심이 결국 관계를 망친다.

대개의 인간관계, 특히 친구나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이유는 '내가 생각한 만큼, 상대가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또한, 상대에 대한 서운함에는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다는 집착이 숨어있다. 집착을 우정이나 사랑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과도하게 챙겨주고 또 그만큼 요구하게 되면 결국 서로 감당을 못하는 관계가 되고 만다. 그래서 거리가 필요하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나에게 맞춰달라고 강요하면 안 되고, 또 반대로 상대의 요구에 맞춰줘서도 안 된다. 결국엔 감당이 안 돼 싸우거나 서로 피하는 관계가 되고 만다.

관계에 집착하지 마라. 진정한 친구가 없다고 인생이 망가질 일은 없다. 내 인생에 모든 걸 줄 수 있는 친구 한 사람에게 목매달다가는 오히려 그 집착 때문에 목을 졸릴 수 있다. 대신 여러 친구를 다양하게 사귈 필요가 있다. 어느 한 관계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관계를 다방면으로 유지하는 편이 외로움을 더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직장 동료는 일을 같이하는 사람일 뿐이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관계를 깊게 가진다 해도, 일이라는 공동의 목적이 무너지면 그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따라서 일을 떠나서 하는 부탁은 사양하라. 그가 상사라 하더라도 지혜롭게 피해가라.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단 하나의 규칙은 모인 목적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다. 축구 모임에서는 축구를 열심히 하면 된다. 환경운동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사회 운동에 진심을 다하면 된다. 그 이상의 기대는 버려야 한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할 일도 없고, 기대가 없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친구에 대한 허상에서 벗어나라. 집착을 버리고 거리를 둘 때 되레 외로움이 줄어들뿐더러, 소원하던 관계가 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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