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제왕학(帝王學)

이한구

발행일 2018-05-09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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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 후손들 화려한 학벌에 이중국적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도 미국 시민권 보유

해외 성공한 오너들 상상 이상의 자식교육
훌륭한 후계자로 키웠기에 기업 장수 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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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유구한 역사의 한국 위계(位階)문화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갑질의 대명사로 치부되던 피자회사 창업주가 여론의 몰매로 퇴진하더니 금년 1월에는 현직 여검사가 미투 운동에 불을 지피고 최근에는 대한항공 근로자들이 전대미문의 오너경영진 퇴진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것이다. '땅콩회항' 악몽이 가시기도 전인데 조양호 회장의 부인과 막내딸까지 패악질(?)을 해댔으니 다이아몬드수저 가족의 그릇된 선민의식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 회장은 자식들을 잘못 가르쳤다며 또다시 머리를 숙였다.

동양의 제왕들은 자식교육에는 과도할 정도로 공을 들였는데 대표적 사례가 정관정요(貞觀政要)이다. 중국 당(唐)나라의 역사가 오긍(吳兢)이 당태종(서기 627-649)의 제위 24년 치적을 기록한 것으로 제왕학(帝王學) 교과서로 으뜸이었다. 태종 이세민은 재위기간 내내 수많은 현자(賢者)들을 중용하고 군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직언과 고간(苦諫)을 경청했던 걸출한 지도자로 칭송된 때문이다. 당태종의 정치철학은 유교적 민본(民本)으로 예악(禮樂), 인의(仁義), 충서(忠恕), 중용지도(中庸之道)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총 40편으로 구성된 정관정요는 역대 당나라 군주들이 애독했음은 물론 후일 송(宋), 요(遼), 금(金), 원(元), 명(明)대의 제왕들이 즐겨 읽곤 했다.

국내의 제왕학은 왕민(王民)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서연(書筵)이 상징적이다. 왕세자로 하여금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익히게 해서 인정(仁政)의 리더십을 쌓도록 하는 것이다. 고려 중엽에 시작한 서연은 이성계가 1392년에 세자관속(世子官屬)을 설치하면서 내용과 질이 풍부해졌다.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정2품정8품 관료 24명이 세자교육을 전담할 정도로 태조의 후계자 교육열은 각별했다. 세자는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스승인 서연관(書筵官)의 특별지도를 받는데 거의 매일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다.

무력으로 형제들을 도륙하고 아버지를 함흥차사로 만들었던 태종 이방원 또한 세자교육에 공을 들였다. 석학인 성석린(成石璘)과 권근(權近) 등을 서연관(書筵官)으로 봉했다. 그러나 왕세자 양녕대군은 공부를 멀리하고 온갖 못된 질과 주색잡기로 소홀하더니 급기야는 중추(中樞) 벼슬을 지낸 곽선의 첩 어리(於里)를 범해 폐세자(廢世子)가 되어 궁에서 쫓겨났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태종은 서연(書筵)을 폐하는 한편 양녕의 비행(非行)을 도왔던 구종수, 구종지, 이오방 등을 참수했다. 양녕대군의 장인 김한노(金漢老)의 직첩을 몰수하고 죽산으로 귀향을 보냈다. '칼이 곧 법'이던 조선시대에도 하늘(?)은 금수저를 엄히 징벌했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 했던가. 동서를 막론하고 장수(長壽) 기업의 비결은 훌륭한 후계경영인을 키우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인들이 자식교육에 상상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이다. 해외사례들은 차치하고라도 국내 대기업 오너 후손들의 학력은 화려하다. 특히 재벌 3, 4세로 갈수록 학벌은 단연 세계최고이다. 명문유치원을 거쳐 대학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코스를 밟음은 물론 미국유학은 필수코스이다. 국적세탁도 유행이어서 대부분의 다이아몬드수저들은 이중국적자이다. 글로벌경영을 하려면 탈(脫)한국은 필수적(?)이란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도 미국 시민권자로 알려졌다. 국내의 모 인사가 10여 년 전에 인도 콜카타의 세계 1위 철강기업인 아르셀로미탈스틸 본사를 견학 때의 목격담이다.

"그곳을 방문했을 때 앳된 얼굴의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허리를 굽힌 채 열심히 사무실 바닥을 쓸고 있었다. 회사의 청소부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미탈스틸 오너의 아들이었다. 귀한 회장님의 아들이 청소를 하다니…" 3대 총수 후보자 아디티야 미탈이 경영수업을 받는 중이었다. 그는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지금은 부친 락시미 미탈 2대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상속받아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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