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판문점 선언과 문학의 자리

홍기돈

발행일 2018-05-14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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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참상 고발 베트남 작가 바오닌
"분단 넘어서려는 전쟁 안된다" 강조
"영웅이 왜 소설로 고생하나" 질문에
"영웅은 그들이 만든거고 난 글쓸 뿐"
문학이란 공간 환하게 드러나는 순간


월요논단 홍기돈2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둥근 삼각형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정의로운 전쟁이란 개념도 성립하지 않는다. 어떠한 명분을 내걸었든 전쟁은 그 자체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들 피로써 피를 씻어낼 수 있겠는가. 증오로써 증오를 해소시킬 수 있겠는가. 그러함에도 피와 증오를 발판 삼아 자신의 입지를 공고하게 다지는 세력은 어느 시대에나 출현하였고, 그네들의 흐름이 단절되지 못하고 이어질 때 나름의 역사가 구축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대충만 훑어봐도 이는 금세 드러난다. 일제가 벌인 침략전쟁을 '성전(聖戰)'이라 칭송하며 조선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던 조선인들이 있었다. 해방이 되었어도 이들 친일파는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 청산되기는커녕 반공주의로 재무장함으로써 정치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는데, 이들이 지상과제로 공공연히 주장했던 것이 북진 통일이었다. 군사정권이 퇴출된 지 사반세기 지났어도 이러한 견해는 여전히 공공연하게 주창되고 있다. 북의 주석궁을 탱크로 밀어 버리고 그 자리에 태극기 꽂는 것이 진정한 통일이라는 목소리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정의로운 전쟁을 강변하는 이들의 유구한 역사 반대편에서는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을 해체하려는 이들의 저항 또한 꾸준히 이어져 왔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이 채택한 '판문점 선언'은 후자의 노력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얻어낸 결실이라 할 수 있겠다. 한반도 비핵화 및 정전(停戰) 상태에서 평화­체제에로의 전환, 경제·사회·문화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겠다는 합의는 한반도의 전쟁­체제에 맞서왔던 이들의 흔들리지 않는 숙원이었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은 전쟁 발발의 위기 국면을 극적으로 돌파하여 평화의 방향으로 나아간 유의미한 사건으로 기록될 터이다.

한반도가 평화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느냐고 따지고 있다. 전쟁 체제에 근거한 기반 자체가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말리라는 위기감이 작동했을 뿐더러, 대결(전쟁)이란 본디 적을 전제하고 나서야 작동하는 구조인 까닭에 그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여 벌어지는 현상이겠다. 이 지점에서 문학의 가치를 떠올리게 된다.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은 전쟁을 다루는 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쟁에 대해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적개심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야 해. 전쟁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곧 사랑과 인도적인 성품과 관용에 대해 쓰는 것이고, 전쟁에 관한 글은 곧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바오 닌은 베트남전에서 작전을 수없이 수행한 군인이었다. 사이공(현 호찌민) 진공 작전에 참가하여 떤 선 넷 공항을 점령할 때 마지막 살아남은 둘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그다. 이러한 체험은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의 질료가 되었는데, 그 내용은 전쟁의 참상 고발이었다. 전쟁에서 삶과 죽음은 우연에 의해 갈릴 따름이며, 사랑·인간·미래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전쟁 뒤의 개인은 어찌하여 모두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지가 절박하게 진술되어 있다. 전쟁 승리의 영광을 고취함으로써 베트남에 대한 자부심을 끌어올리려는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달가웠을 리 없을 터, '전쟁의 슬픔'은 검열에 의해 '사랑의 숙명'으로 제목이 뒤바뀌기도 했고, 판매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베트남 내에서의 핍박과는 아랑곳없이, 2008년 '20세기 세계명작 50선'(영국번역가협회)에 선정되는 등 '전쟁의 슬픔'에 대한 세계 문단의 호평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었던 날, 바오 닌은 마침 제주도에서 열렸던 4·3항쟁 70주년 관련 국제문학심포지엄에 참석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분단을 넘어서기 위한 방편으로 결코 전쟁이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뒤풀이에서는 판문점 선언을 지지하는 소회와 함께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변도 들을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전쟁 영웅인데, 선생님께선 왜 하필 그런 소설을 써서 굳이 고생하셨나요?"

"영웅을 만드는 건 그들의 일이고, 글을 쓰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요. 나는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이지요."

문학의 자리가 환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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