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모란이 피기까지는

권성훈

발행일 2018-05-22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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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1903~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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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5월에 개화하는 크고 화려한 모란꽃은 부귀와 명예를 상징하며, '꽃 중의 왕'이라고 하여 '화중지왕(花中之王)'으로도 불린다. 누구에게나 모란꽃처럼 불꽃으로 타올랐던 화려한 날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그 환희의 순간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허탈감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이 시는 봄날 뒤에 찾아오는 안타까움을 모란꽃에 비유하면서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에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겨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을 맞이하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여윈 봄'을 있게 한, '오월 어느 날'의 지금쯤 '떨어져 누운 꽃잎'들이 시들어가는 현장에서 우리는 기쁨이 클수록 슬픔도 비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모란이 피기까지"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마음에 떨어진 꽃잎은 '찬란한 슬픔의 봄'이 되고, 슬픔도 찬란할 수 있다는 '언어적 모순'을 통해 '실제적 진실'에 가닿게 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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