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식의 다시 보는 한국 프로야구 명장면·8]최동원-선동열 마지막 맞대결

15이닝 무승부 '영화같은 마무리'

경인일보

발행일 2018-05-22 제15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최, 209구 던지며 8탈삼진 2실점
선, 232구 10탈삼진 2실점 '맞불'
두 태양의 '전설로 남은' 명경기


2018052101001605900076981
1984년에 정규리그 27승과 한국시리즈 4승을 기록하며 가장 높은 곳에 떠올랐던 최동원이라는 태양은 85년 20승, 86년 19승으로 중력을 무시하는 궤도를 그렸고, 1985년에 혜성처럼 나타난 선동열은 86년과 87년에 거푸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무섭게 솟구치기 시작했다.

선동열이 24승과 0.8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던 1986년, 최동원 역시 19승과 1.55를 기록하며 아직은 물러설 때가 아니라는 오기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 해에는 최동원과 선동열이 두 번에 걸쳐 선발 맞대결을 벌여 한 번씩의 완봉승과 한 번 씩의 완투패를 나누어 갖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미처 판가름내지 못했던 승부가 이어진 것이 1987년, 5월 16일이었다.

1회 초와 말이 모두 삼자범퇴로 처리되며 싸늘하게 시작된 경기는, 그러나 2회 말 롯데가 김용철의 볼넷과 김민호, 정구선의 연속안타로 만든 무사 만루의 위기에서 해태 내야실책을 틈타 먼저 2점을 선취하며 균형이 깨졌다.

하지만 최동원도 완벽한 컨디션은 아니었다. 몇 해 동안 조금도 늦추지 않고 전력투구만을 강행해온 무모한 행보 탓인지 구속은 '최동원'이라는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것이었고, 그렇게 무뎌진 속구는 커브의 위력마저 반감시키고 있었다.

그는 3회 초 2사 2루에서 서정환에게 적시타를 맞아 추격의 1점을 내주었고, 5회에도 선두타자 김일권에게 안타를 내준 데 이어 차영화에게 큼지막한 2루타까지 내주는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해태 김무종의 번트 실패 덕분에 선행주자 김일권을 잡아낸 데 이어 롯데 포수 김용운이 정확한 홈 블로킹으로 해태의 대주자 이순철까지 홈에서 잡아내며 실점 없이 넘겼지만, 위기는 이어졌다.

하지만 그 날의 승부의 핵심은 힘과 기술이 아닌 자존심과 뚝심이었다.

선동열은 초반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곧 냉정을 되찾았고, 최동원은 초반의 안일함을 자책하듯 열정을 끌어올렸다.

해태와 롯데의 타자들은 삼진, 혹은 기껏해야 내야 땅볼을 주고 받으며 부지런히 타석과 더그아웃 사이를 오고갔다.

하지만 흐름이 이어지는 한 이미 초반에 만들어진 한 점의 열세를 안은 해태 쪽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9회 초, 해태의 김응용 감독은 선두타자 6번 한대화가 안타를 치고 출루하자 7번 김일권에게 보내기번트를 지시했고, 8번 타순의 포수 장채근마저 빼고 왼손 타자 김일환을 내세우는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최동원은 그 마지막 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그 어느 것보다도 짜릿했을 1승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결국 김일환이 우익수 키를 넘기는 커다란 2루타를 때려 2루의 김일권을 불러들이며 동점을 만들었고,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늘 경기 전에 이미 남들 한 경기 던질 만큼의 공을 뿌리며 몸을 풀던 최동원의 어깨는 이미 한계를 한참 넘은 상태였다. 하지만 롯데는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그리고 늘 그 자존심에 대한 책임을 완벽하게 져왔던 최동원을 함부로 내릴 수도 없었다. 상황은 여전히 동점이었고, 더구나 상대는 다른 투수도 아닌 선동열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해태 쪽에도 있었다. 선동열 역시 만만치 않게 많은 공을 던지고 있었지만 네 살이나 많은 최동원보다 먼저 '체력'을 핑계 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주전포수 김무종과 백업포수 장채근, 그리고 포수 수비가 가능한 이건열마저 모두 소진해버린 난감한 처지에 빠져 있었다.

결국 연장 10회, 마운드에 다시 선 것은 최동원과 선동열이었다. 그리고 해태는 내야수 백인호가 포수마스크를 쓰고 앉는 진풍경까지 연출해야 했다. 하지만 경기의 양상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삼자범퇴, 삼자범퇴.

말 그대로 '신들린 듯' 던지는 투수들. 바로 그렇게 최동원과 선동열은 신들린 듯 다시 6이닝을 던졌고, 연장 15회 말 선동열이 롯데의 마지막 세 타자를 연달아 삼진으로 잡아내며 길고 긴 승부의 끝이 맺어졌다.

232개의 공을 던져 7피안타 6사사구 10탈삼진을 기록하며 2실점한 선동열, 그리고 209개의 공을 던지며 11피안타 7사사구 8탈삼진과 역시 2실점을 기록한 최동원. 물론 경기 결과는 무승부였다.

그 순간 이후 두 선수 사이의 맞대결은 다시는 벌어지지 않았다.

/김은식 야구작가

경인일보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