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황장엽과 태영호

이영재

발행일 2018-05-25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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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북한을 탈출한 건 1997년 2월 12일이었다. 그는 한때 북한 권력 서열 13위였다. 고위급 인사 망명에 고무된 김영삼 정부는 그에게 부총리급 예우를 해 주었다. 하지만 1년 뒤 정권이 바뀌었다. 김대중 정부는 그가 적극적인 대북 활동을 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쓸데없이 북한을 자극해 햇볕정책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해서다.

김대중 정부의 우려대로 황 전 비서는 김정일의 잔인성을 폭로하고 북한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일에 열의를 바쳤다. 2002년에는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를 출간해 김대중 정부로부터 큰 미움을 받았다.

주체철학으로 북한 체제를 설계한 그가 탈북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북한은 그와 가까웠던 가족 친구 제자 등 2천명 이상을 숙청했다. 부인은 자살하고 자식은 반신불수 상태에 빠졌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렸다. 진보 정권 10년 동안 황 전 비서는 사실상의 출국금지 또는 연금 상태였다. 그에게는 10년의 세월이 자신이 꿈꾸었던 통일의 싹이 뿌리째 뽑히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절망의 세월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2010년 10월 안가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생전에 그는 "김정일의 폭정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 보다 진실을 외면하는 일부 남한 사람이 더 문제"라고 늘 걱정했다.

2016년 8월 박근혜 정부 시절 망명한 태영호 전 북한 영국 공사가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에서 사퇴했다. 최근 그는 증언집 '3층 서기실의 암호'를 출간하고 남남갈등의 가운데 서 있었다. 지난 14일엔 국회에서 출판기념 강연회를 갖고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웠다"고 그와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태 전 공사가 기자회견 하면서 북한에 대해서 적대적 행위를 내질렀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그를 추방하자는 청원도 올라왔다.

갑작스런 그의 사퇴 소식에 황장엽이 떠 오른 건 데자뷰 같아서다. "왜 사직했는지 차후 남북관계가 평가할 것"이란 사퇴의 변이 오히려 더 마음에 걸린다. 그의 증언집은 지금 예스24, 교보문고 등 온·오프라인에서 확고한 베스트 셀러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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