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칼럼]또다시 사회적 민주주의로…

윤상철

발행일 2018-05-29 제2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네트워크화 된 젊은 세대들과
양극화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등
서서히 성장하며 저항력 키워
사회적 민주주의 제기함으로써
지배자들에게 민주주의를 요구


2018052801002206100106771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이전에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말한 바 있다. 이른바 '제3의 물결 민주화' 초기에 다수가 낙관적으로 기대했던 민주주의의 확장 및 심화 가능성이 현실의 정치와 경제에 의해 왜소화되거나 부정당했지만, 사회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희망을 걸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현실의 정치를 살펴보자. 선거는 정규적으로 반복되고 여·야간의 수평적 정권교체도 세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누구도 쿠데타와 같은 비선거적 방식을 도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치권을 신뢰하지 않는다. 정치적 이슈들이 부단히 동원되지만 진영논리에 매몰되거나 제도적 한계에 갇히어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부족하다. 현실의 경제는 어떠한가? 경제성장은 지속되고 한국의 국가 명목 GDP는 세계 12위이고 국가신용등급도 매우 높고 안정적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하고 비정규직 등 고용의 질이 낮다.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기에는 세계화와 경쟁, 남북관계 등 국내외적 상황이 우호적이지 않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제도화와 진영의 논리에 위축되고, 경제적 민주주의가 성장과 효율의 늪에 빠져 있다면 사회적 민주주의는 어떠한가?

정치적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전근대적 사회관계는 성희롱과 성폭력 등 사회적 민주주의의 파탄을 보여준다. 고용과 하청 등 경제적 지배관계에서 비롯된 갑질 사례 역시 사회적 민주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산업은행은 퇴직자들을 낙하산으로 받아주는 조건으로 기업들에게 돈을 대출해준다. 은행경비원들은 은행과 고객, 그리고 용역업체로부터 3중 갑질을 당한다. 정수기 설치기사들의 정규직화와 치킨업체 가맹점 착취 등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전근대적 권위주의를 해체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언론의 폭로기사,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 그리고 동반성장위원장의 엄포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민주주의마저 이렇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희망은 없는가? 다행스럽게도 정치 및 경제 영역 안에서, 그리고 그 효과에 의해 질식된 사회적 민주주의는 개인화, 자유화, 정보화, 세계화 속에서 그 희망의 불씨를 키워냈다.

성차별을 배격하고 평등한 인권을 지향하는 미투운동은 정치와 경제에 대한 발본적 성찰과 재구조화 없이는 멈추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인권 보호 및 차별 철폐와 더불어 내부 권력구조의 변화가 동반될 때에 비로소 미투운동을 촉발한 원인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성희롱과 성폭력은 남성 지배의 정치, 행정조직을 성평등한 조직으로 바꿈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일찌감치 성평등적 인사정책이 이루어졌더라면 검찰 내 성폭력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차별적 임금구조는 기업 내의 차별적 인사구조와 더불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평등구조를 혁파하지 않고는 해소되기 어렵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갑질 규탄 촛불집회'는 4차로 이어지면서 광화문과 보신각으로 중앙을 향하고, 이를 지원하는 크라우드 펀딩이 이어지며, 매 집회마다 시민들이 합세한다. 재벌가의 갑질은 과거에도 더 끔찍한 형태로 발생했지만 이처럼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었다. 오너 일가가 저지른 갑질행위를 규탄하는 집회는 이제 총수 일가의 퇴진을 외치고 시민들이 이에 동조함으로써 재벌기업의 가족 승계구조는 물론 재벌체제의 작동방식에 대해 근본적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재벌개혁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위로부터의 공격보다 사회적 민주주의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의해 시작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요컨대,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 가능성은 사회적 민주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회적 민주주의의 자원은 네트워크화된 젊은 세대, 양극화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학생, 중소기업, 가맹업자 등에서 서서히 성장하면서 저항과 민주주의의 잠재력을 키우고 있다. 그들은 사회적 민주주의를 제기함으로써 사회적 지배자이자 정치적, 경제적 지배자들에게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사회적 민주주의가 다른 영역의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뇌관으로 작동한다. 모름지기 국가와 정치권력은 권위주의적 공포로부터 인지적 해방을 경험한 이들의 요구를 차단하거나 우회시키지 말고 사회구조의 민주주의적 재구성으로 이끌 수 있도록 지원과 찬사를 보내야 한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윤상철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