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60]삼성-12 글로벌 삼성 시대 개막

전세계 퍼진 생산거점 '전진기지 깃발'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8-06-05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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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이듬해 VCR 공장 설립
헝가리·태국등 컬러TV 수출기반
해외본사 운영 지역단위 통합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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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시대 이후 삼성의 최대 특징은 사업영역을 해외로 확대하는 것이었는데 첫째는 사회주의경제권 진출이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에 힘입어 1980년대 후반부터 공산권 여러 나라와의 동시다발적인 비즈니스를 활발히 전개했는데 한중수교 이듬해인 1993년에 삼성전자는 중국의 톈진통신광파공사(TCB)와 합작해 톈진시 경제기술 개발구 내의 부지 2만평, 건평 6천400평을 확보하고 연 60만대의 VCR 완제품과 핵심부품을 생산하는 톈진삼성유한공사를 설립했다.

공장은 1995년 1월에 준공했는데 이후 톈진의 디스플레이 복합단지(1993 VCR, 1994년 컬러TV, 1997년 모니터 등), 웨이하이(威海) 통신기지(1993), 쑤저우(蘇州) 가전 반도체 복합단지(1995 백색가전, 1994 IC와 TR 조립), 후이저우(惠州) 오디오단지(1992 광기기 단지) 등 중국 전역에 종합전자회사의 기반을 다졌다.

동유럽의 경우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 최초로 헝가리 오리온(Orion Radio Electrical Works) 간에 40대 60의 비율로 자본금 500만달러의 합작기업을 설립했다.

부다페스트로부터 50㎞ 떨어진 공장에서는 1990년 4월부터 연 10만대의 컬러TV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삼성물산은 1990년 1월에 폴란드 최대의 화학 원료 생산업체인 IZCH사로부터 향후 3년간 2천만달러 상당의 소다회 50여 만t을 중국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또한 삼성물산은 1990년 4월 소련 모스크바 시내의 스포츠호텔 지분 51%를 240만달러에 사들였으며 1992년 1월 카자흐스탄정부와 합작해 카자흐스탄의 천연자원 개발업체인 자본금 50만달러의 카잠(Kasam)사를 알마아타에 설립했다.

삼성은 1992년부터 국제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1992년 삼성전관은 핀란드 노키아, 네덜란드 필립스, 일본 도시바를 제치고 동독의 브라운관 제조업체인 WF(Werk Fur Fernsehelektronik GmbH)를 400만달러에 인수했다.

베를린시에 소재한 WF는 1920년대 설립된 브라운관, 진공관, 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동독 최대의 전자전문업체로 인수 당시 종업원 수 1천200명, 대지 3만평, 건평 1만2천평 등이었는데 인수 후 SEB(Samsung Elektronische Bauelemente GmbH)로 변경했다.

1993년 4월에는 미국 Harris사의 갈륨비소사업을 인수하고 1994년에는 동독의 브라운관용 유리제조회사인 FGT 지분 100%를, 1994년 5월에는 세계 최고의 오디오 설계기술을 지닌 일본 럭스사의 주식 51%를 20억엔에 각각 인수했다.

'럭스멘' 브랜드로 세계시장에서 마니아용 앰프와 컴포넌트 등 오디오의 명가로 사랑받았으나 1991년 이후 계속된 경기 부진 때문이었다.

1995년 7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소재의 AST 지분 40.25%를 3억7천800만달러에 인수했다.

동사는 총자산 10억4천만달러, 종업원 7천명, 1994년 매출 24억달러, 순익 5천400만달러의 세계 6위의 PC전문 업체였다. 1995년에는 일본 유니온 광학, 독일 롤라이, 미국 AST Reserch, 브라질의 베타니, 이탈리아의 TEC 등을 차례로 인수했다.

해외생산 확대도 병행했다. 삼성전자는 1988년 10월에 태국 사하그룹과 지분 49대 51의 비율로 합작해 자본금 900만달러의 타이 삼성(Thai Samsung Co. Ltd.)을 설립하고 1989년 7월에는 방콕 남쪽 100㎞의 스리라차공단 내에 대지 1만3천평, 건평 3천평의 연 컬러TV 20만대의 생산공장을 마련했다.

삼성그룹의 6번째 해외생산거점이었다.

삼성전기는 1990년 11월에 1천100만달러를 투자해 TV 핵심부품 공장을, 삼성중공업은 저장설비, 보일러, 철골, 배관 등을 생산해 동남아시장에 수출할 목적으로 1995년 6월에 태국 마타푸트공단에 3만평의 태국공장을 각각 건설했다. 국내적으로 지속적인 인건비상승 탓이었다.

삼성은 제품의 해외수요 확대에 따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필리핀, 스페인, 영국 등에 각각 해외생산 거점을 확보해 글로벌 삼성으로 빠르게 변모해 갔다.

삼성은 사업거점의 글로벌 다각화와 함께 1994년부터 국제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동안 그룹 관계사나 사업부단위에서 해외로 진출했으나 이후부터는 소속 관계사나 사업의 차이와는 관계없이 해외지역 단위로 삼성의 여러 사업을 통합 관리하는 내용의 해외 본사제를 운영한 것이다.

세계가 국경 없이 글로벌화 되면서도 한편으론 더욱 지역적인 결속을 다지는 소위 글로컬리제이션을 배경으로 1994년 1월 일본 본사, 1995년 1월 미주, 구주, 중국 본사를 각각 설립했으며 동년 10월에는 동남아 본사도 발족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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