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식의 다시 보는 한국 프로야구 명장면·10]1989년, 부산 '라이온즈' vs 대구 '자이언츠'

'내쳐진 에이스' 최동원과 김시진

경인일보

발행일 2018-06-05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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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내 문제아' 'KS 새가슴' 낙인
삼성-롯데 트레이드 성사 '팬 분노'
자존심 상처 하락세 '쓸쓸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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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는 해마다 연봉싸움에서 질기게 버티며 '물을 흐리는' 데다가 선수회까지 만들겠다고 앞장섰던 골칫거리 최동원을 처분하고 싶었고, 우승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독한 선수'라고 판단했던 삼성은 김시진을 내주고라도 최동원을 가지고 싶었다.

매번 한국시리즈 우승의 문턱에서 걸려 넘어지던 삼성으로서는 최동원이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거둔 4승이 김시진의 통산 111승보다 훨씬 무게있는 기록으로 여겨졌다. 김시진은 한국시리즈에서만큼은 그 때까지 7연패만을 기록하고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회심의 트레이드는 두 팀과 두 선수, 그리고 두 팀의 연고지 팬들 모두에게 만족이 아닌 상처만을 안겨 주고 말았다. 아직 너무나 단단하게 붙어있던 서로의 머리와 심장을 떼어내 바꿔 끼워 넣는 어설픈 수술이 너무 많은 피를 흘리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최동원은 구단의 고유권한인 트레이드 결정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않았지만, 자신의 고유권한인 새 구단과의 계약을 거부하며 버텼다. 조건은 엉뚱하게도 롯데 박종환 단장의 퇴진이었다.

반면 김시진은 곧장 새 팀으로 옮겨 칼을 갈기 시작했고, 롯데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등판하던 1989년 4월 14일 OB와의 대전경기에서 자신은 절대 새가슴이 아니라는 것을 항변하는 듯 14이닝동안 219개의 공을 던지는 오기를 발휘하며 완투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분노도 오기도 오래도록 힘을 쓸 수는 없었다.

김시진은 곧 4연패의 늪에 빠지며 허우적거리기 시작했고, 6월 말이 되어서야 삼성 입단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합류한 최동원은 준플레이오프 2차전과 3차전에 연달아 선발등판 했지만 모두 초반에 강판당하며 사상 첫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 태평양 돌핀스가 벌이던 자축연의 조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부산의 팬들은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맞은편 더그아웃에 앉은 최동원이 눈에 띌 때마다 응원가 가사를 잊었고, 대구의 팬들은 롯데 유니폼을 입고 돌아온 김시진을 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섣부른 판단으로 성적도, 팬들의 호응도 모두 잃어버린 채 밀려드는 부산팬들의 항의전화에 질려버린 롯데의 단장과 사장이 정말 최동원이 삼성과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던 날 사표를 내야만 했다. 그것도 그해 트레이드가 몰고 온 후폭풍의 한 요소였다.

그 시기 있었던 트레이드에서, 장효조와 김용철은 잠시의 충격을 딛고 일어서 다시 자신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마무리를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타자와 달리 예민한 것이 투수였고, 그중에서도 자존심 하나로 존재하던 이름이 최동원과 김시진이었다. 김시진은 92년 중반까지 3년 반을 더 롯데에서 뛰면서 13승과 24패를 통산기록에 추가했고, 최동원은 두 해 동안 7승과 7패만을 더한 뒤 90년을 끝으로 옷을 벗고 말았다.

선수생명이 짧았던 시절이긴 했지만, 충격적인 트레이드가 막 서른을 넘어서던 두 전설적인 투수의 허리를 꺾어놓은 것이다.

각 프로야구단들이 연고지 안에서 마음껏 고를 수 있는 선수의 수는 3명에서 2명을 거쳐 1명으로 줄었고, 이제는 그나마 전면드래프트제가 도입되면서 옛날일이 돼 버렸다.

그래서 연고지와 구단의 연결관계는 상징적인 것으로 격하되었고, 구단과 선수의 관계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직장과 직원의 계약관계로 돌아갔다.

지금에야 누군가 트레이드 매물이 되었다고 해도 자신이 팀의 필수요원이 아니라는 서운함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뿌리 뽑힌다'는 위기감을 느낄 리 없다. 하지만 그게 꼭 좋은 변화인지는 또 모르겠다. 개방화도 좋고 평준화도 좋지만, 그래도 야구가 제일 재미있는 것은 구단과 팬이 한 몸이라고 느껴질 때가 아닌가 해서다.

최동원과 김시진은, 1988년 11월 23일 이후 다시는 고향 팀에 돌아갈 수 없었다. 선수로서도 그랬고 지도자로서도 그랬다.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는 최동원과 김시진이라는 이름에서 떨림을 느끼고, 그리워하고, 애틋해한다.

잘려나간 분신들에게서 20년이 넘도록 아픔을 느끼는 것, 기껏 공놀이 따위가 가슴에서 암세포처럼 번져버린 야구광들 이야기다.

/김은식 야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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