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선거 이후 국회는 어떤 모습일까

최창렬

발행일 2018-06-06 제19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헌재가 내린 국민투표법 개정도 하지 않고
국회의장 인선도 미뤄가며 스스로 법 어겨
이러한 관행·타성 지속될 개연성 높아
자정안하면 시민은 국회에도 촛불 들 수도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지방선거가 일주일 후로 다가왔으나 선거의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다. 한반도 평화라는 초대형 이슈에 가린 선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어느 선거보다 투표율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정세 변화가 갖는 세계사적 의미와 북미정상회담 변수가 여타의 선거 쟁점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시대착오적 인식이 선거를 일방적인 구도로 기울게 만든 요인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남북정상회담을 정치쇼라고 치부하는 한국당의 시대착오적 반공주의에 입각한 정세인식은 선거를 더욱 기울어진 구도로 흘러가게 하고 있다. 제1야당은 문재인 정권의 지난 1년 동안의 소득격차의 심화, 최저임금의 경제적 부작용 등 여러 사회경제적 쟁점 등을 제기하면서 선거를 정권심판의 구도로 끌고 갈 때 선거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나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당의 인식은 유신과 권위주의 시대의 냉전적 사고에 갇혀있다.

문제는 선거 후의 정치지형의 변화 여부다. 현재의 국회 구도는 시민의 개혁과 혁신에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여소야대의 정당지형은 개혁의 동인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제약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은 여당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정당구도를 변화시킬 유인을 상대적으로 감소시킨다. 지금의 국회와 정당체계에서 개혁의 동인을 발견할 수 없다. 재보궐 선거로 국회 의석의 변화가 예상되지만 지방선거가 정당구도 자체의 변동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개발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의 왜곡되고 구조화되었던 자본과 권력의 불의한 동거, 시민사회의 계층 간 모순과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화가 지체된다면 한국사회의 본질적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지난 1/4 분기의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계층의 소득격차는 더욱 심화됐다. 사회적 격차의 일상화,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진보 정권이 집권했다고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화된 사회적 구조 때문이다. 개혁과 혁신은 시민의 자발적인 지지와 동의를 바탕으로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집단이 세력으로서 변화를 추동하고 개혁을 이끌 때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시민사회의 갈등을 조직화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시스템이다. 지방선거 이후에 여야 정당들은 시민사회의 갈등과 균열을 반영하는 정당체제로의 변화를 견인해야 한다. 지금의 정당구도로는 아무 개혁도 할 수 없다. 지난 1년의 정당체제가 이러한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세력은 가시적 적폐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구조적 적폐의 청산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물론 개혁세력으로 자칭하는 세력조차 이에 부응하기커녕 높은 지지율에 안주하면서, 결국 자유한국당 염동열·홍문종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적폐란 바로 이러한 위선적 태도를 지칭한다.

국회는 헌법재판소가 내린 국민투표법 개정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회법에 정한 국회의장 인선도 미뤘다. 도려내야 한 관행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이렇게 법을 어긴다. 이런 국회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자유한국당은 본회의 한 번 열기 어려울 것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 6월 임시국회를 소집했다. 의장단과 원구성에는 일절 협조하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이러한 관행과 타성이 지속될 개연성이 높다. 촛불의 압력과 시민의 요구에 의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났다. 물론 헌법 절차에 따라 국회는 재적 2/3가 탄핵에 찬성했지만 국민의 압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회가 국민의 압력에 의해 자정하지 않으면 시민은 국회에도 촛불을 들 수 있다.

지방선거 이후에 보수와 진보 각 진영은 정당재정열을 통하여 갈등과 균열의 조정자로서의 국회의 위상을 찾아야 한다. 주권자를 구시대적 통치의 객체로 인식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법 어기기를 식은 죽 먹듯이 할 수는 없다. 시민은 통치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최창렬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