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칼럼]무궁화호 타기

방민호

발행일 2018-06-12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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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랑·트렁크·백팩 등 다양한 가방
맨발·농구화·샌들 갖가지 신발들
빽빽한 기차안의 '사람 사는 풍경'
사람 살리는 정치라는게 무엇일까
그들 삶 이해하는 일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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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요즘엔 무궁화호 타는 게 옛날보다 쉽지 않다. 한두 시간 전에도 코레일 어플에 좌석표가 남아 있던 시절은 지나갔다. 휴일 날 대전에 가려고 급하게 표를 찾으면 없다. 비상이다.

4호 칸은 열차카페라 하는데 실상은 입석 승객 천국이다. 카페 기능은 잃어버린 지 오래다. 차내 서비스가 없는데 카페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판기가 이 차 중 카페의 전부다. 그래도 앉아서 먹으라고 창을 향해 앉을 수 있는 좌석도 2~3인용이 셋 있다. 반대편에는 서서 먹으라고 긴 배튼도 놓여 있다.

한 이십 분 전에 이 카페를 찾으면 입석이라도 버젓한 좌석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아뿔싸, 늘 늦듯 이번에도 늦었다. 방법이 있기는 하다. 긴 배튼 아래 바닥에 '철푸덕' 앉아 가는 것이다. 긴 좌석 의자에 셋이 비좁게 앉아 가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다.

그래도 꽤 일찍 플랫폼에 들어온 덕분에 제법 좋은 자리에 '일요신문'을 깔고 앉았다. 바닥에 깔고 앉으려고 '스토리웨이'에서 일부러 샀다. 인터넷, 휴대폰을 지금만큼 많이 안 볼 때는 '일요신문' 어지간히도 봤다. 그걸 봐야 갈증이 풀릴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지금은 정치에서 멀어졌다. 지방선거라는데도 뉴스가 귓등 바깥으로 스쳐 지나간다.

출발할 때가 가까워오자 드디어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어 온다. 옛날 전쟁 때 피난 갈 때야 비할 바 없고 비둘기호 때보다도 낫겠지만 그래도 사람 많다.

먼저 내 옆에 사람들이 혹은 서고 혹은 앉더니 그 앞사람 지나다니는 곳에도 엉덩이 붙이고 앉고들 한다. 기차가 영등포에 서자 다시 한 번 사람들이 밀려든다. 공기가 점차 사람들 숨으로 덥혀진다. 아직 사람 냄새는 여름이 덜 되어 나쁘지 않다.

한 스님이 사람들 꽉 들어찬 곳으로 커다란 바랑을 짊어지고 문간에 나타났다. 어떻게 될까. 스님은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오시더니 나와 흰 트렁크를 모셔놓고 선 키 큰 젊은이 사이 약간의 빈 공간에 커다란 엉덩이를 '들이밀고' 나처럼 '철푸덕' 앉아버리신다. 그보다 먼저 짊어지고 오신 바랑은 내 에코백이 놓여 있는 모퉁이에 털썩 던져 놓으셨다. 이런 경우에 화가 나는 사람은 유머 감각 없거나 야박한 치다. 다 같은 신세인 때문이다. 자리를 슬쩍 옮겨 공간을 드린다. 스님의 엉덩이는 '크다'. 스님 앞에 있게 된 여학생 둘이 고개를 돌리고 휴대폰에 더욱 열중한다.

나는 스님의 모습을 옆으로 살펴본다.

승복은 낡디낡으셨는데 걷어붙인 팔뚝에 검버섯이 졌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린 데다 원래 붉어 보인다. 연세가 있으시다. 예순은 넉넉히 넘으셨다. 기차가 떠나자마자 크록스 신발을 아예 벗어놓고 맨발이 된 채 발을 뻗고 주무신다. 수원까지 내리 주무시다 문득 잠을 깨셔서는 옆에 사람한테 동대구까지 간다고 사투리 섞인 말씀 툭 던지시고는 또 주무신다. 천안에서 문득 잠을 깨셔서는 여기 대전이냐고 물으시고 또 주무신다.

휴대폰만 보던 여학생 둘이 일어선다. 자리가 여유가 났다. 트렁크 젊은이도 천안에서 나간다. 인총 빽빽하던 카페가 갑자기 숨통이 트인다.

이제 여유로운 마음으로 카페에 둘러앉고 선 사람들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사람보다 차라리 가방들이 보인다. 바랑에, 트렁크에 비닐백에, 에코백에, 가죽 가방, 캐리어, 백팩에, 가방도 가지가지다. 이번에는 발들을 본다. 맨발에, 농구화에, 축구화에, 샌들에, 슬리퍼에, '삐딱구두'에, 스니커즈, 삼선화도 있다.

가끔 무궁화호는 뜻하지 않은 곳에도 선다. 이번에는 부강역이다. 언젠가는 전의역에도 섰다. 나는 작은 역도 빠짐없이 쉬어가던 비둘기호가 지금도 그립다. 스님은 여전히 수면 삼매경이시다. 크록스 신발은 벗어 두 다리 사이에 끼워 놓으셨다.

사람 사는 일이 무엇이냐. 사람을 살리는 정치라는 것이 무엇이냐.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 사람들 삶을 이해하는 일을 생각한다. 기쁘게도 슬프게도 생각 말고 더 깊이 들어가야 할 때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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