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치자꽃

권성훈

발행일 2018-06-12 제2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2018061101000730600035342

저녁 으스름 속의 치자꽃 모양

아득한 기억 속 안으로

또렷이 또렷이 살아있는 네 모습

그리고 그 너머로

뒷산 마루에 둘이 앉아 바라보던

저물어가는 고향의 슬프디슬픈 해안통海岸通의

곡마단의 깃발이 보이고 천막이 보이고

그리고 너는 나의, 나는 너의 눈과 눈을

저녁 으스름 속의 치자꽃 모양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지켜만 있는가

유치환(1908~1967)

2018061101000730600035341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기억은 시간과 속도 없이 찾아온다. 망각의 시간을 건너온 기억의 파편들은 무의식 속에서 한송이 꽃이 피어나듯 펼쳐진다.

6월에 피는 '치자꽃 모양' 같이 '저녁 어스름 속살'을 보이면서 '아득한 기억 속 안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럴 때면 청결, 순결, 행복, 즐거움의 꽃말을 가진 치자꽃처럼 한없이 행복했던 한 때를 추억하며 "또렷이 또렷이 살아있는 네 모습"이라는 '그 너머로' 생각의 퍼즐이 맞춰진다.

그것은 무릇 떠날수록 떠날 수 없는 "너는 나의, 나는 너의 눈과 눈을"마주치며 "뒷산 마루에 둘이 앉아 바라보던" 치자꽃 피던 고향의 하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지켜만 있는가" 하얗게 추억을 내민 꽃잎은 그렇게 저녁을 물들이며 고향의 향수에 젖게 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권성훈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