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진 칼럼]종교의 영역

홍창진

발행일 2018-06-19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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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교로 믿음 생활하고 있다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잘 살펴라
종교는 미래 보장해주는 보험 아냐
신을 통해 인간의 본모습 깨닫고
욕심 버리고 평화 얻는게 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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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어두컴컴한 새벽, 전등불이 환하게 켜지는 곳은 절, 교회, 성당 그리고 보험회사 사무실이다. 새벽 미사를 드리려고 졸음을 참고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면, 건너편 고층 빌딩의 5개 층에 벌써 불이 들어와 있다. 그 환한 불빛 사이로 '○○보험'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종교인들이야 혼탁한 세상을 깨우기 위해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연다지만 저들은 무엇을 위해 새벽부터 이 부산을 떠는 것일까?

사실 20~30년 전만 해도 보험회사는 지금처럼 성장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취업과 결혼, 집 장만, 육아 등 미래의 청사진을 자신의 힘으로 일굴 수 있었다. 자기 주도적으로 인생을 꾸려갈 수 있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보험 같은 것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보험 상품 한두 개쯤은 갖고 있다. 미래가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는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불행을 과장되게 꾸며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버는 셈이다. 어떤 비용 투자 없이 불안을 사고파는 것으로 영업이 되니, 일면 신기루 같은 사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 영업 형태를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세월 일부 종교에서는 진리를 가르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불안한 미래를 두고 겁을 주면서, 절대자인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 불에 떨어진다고 설교했다. 심지어 헌금을 내면 대신 기도해 불행을 막아줄 것처럼 유도하기도 했다. 일정 보험액을 내면 미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보험회사가 떠들 듯이, 종교 역시 얼마나 정성을 바치느냐에 따라 미래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겁을 주었고, 사람들은 종교를 떠나면 큰 봉변을 당하는 줄 알고 그 가르침을 맹신했다.

요새는 보험회사가 하도 영업을 잘해서인지, 일부 종교의 잘못된 행태가 많이 사라졌다. 불안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이제 보험회사의 몫이다. 그나마 남은 영업수단이 장례 때 복을 빌어주는 일인데, 이 일도 상조회사가 나타나서 자리를 뺏겨버렸다.

종교의 본래 기능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게 해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다. 신에게 의존해 마치 모든 일을 신이 다 해결해 줄 것처럼 매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살게 하는 것이다. 즉, 살면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의 정답이 실은 내 안에 있음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아이가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란다면 돈을 내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무턱대고 합격하게 해달라고 빌 게 아니라, 공부로 힘들어하는 아이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이런 세상 이치를 이해하고 제 스스로 노력하도록 힘을 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다. 종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설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더 노력해야겠구나'하며 힘을 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종교를 소원을 이뤄주는 요술램프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 입시 백일 전에 성당, 교회, 절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불경이든 성경이든 어느 종교 경전에서도 "복을 빌어라, 그러면 내가 복을 주겠다"고 가르치는 구석은 없다.

내가 만일 어떤 종교에 소속되어 지속적으로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면 내 종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잘 들여다보라. 그리고 나는 어떤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잘 살펴보라. 종교는 미래를 보장해주는 보험 상품이 아니다. 신을 통해 인간의 본 모습을 깨닫고, 욕심을 버리고 평화를 얻는 것이 종교의 참모습이다.

/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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