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훈 당선자가 이번 선거운동 기간 상가를 방문해 지지를 방문하는 모습. /도성훈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
1960년 충남 천안 산골서 외아들로 태어나
인천성헌고(현 인제고) 첫 교사생활 시작
재단비리 맞서 학교민주화투쟁 주도 해임
1989년 전교조가입 활동 이유 해직되기도
2003년·2005년 11·12대 인천지부장 역임
동암중 교장 '마을교육 공동체' 결성 노력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당선자의 30여년 교직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교사로서 부임한 첫 학교에서 해임됐다. 복직했지만 다시 해임과 복직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는 첫 학교에서 해임을 당한 지 39년 만에 인천 교육을 이끄는 교육감이 됐다.
도성훈 당선자는 1960년 12월 10일 충남 천안시 목천읍 석천리에 있는 작은 산골마을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유년시절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부모님이 궁핍한 산골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원도 공장에 취직했기 때문이다. 10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인천 부평구에 정착하면서 부평남초에 전학했고, 부평동중, 부평고를 졸업했다.
도성훈 당선자의 중학교 입학 기념 사진. /도성훈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
부평고를 졸업한 뒤 1979년 중앙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박정희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학내 시위가 빈번했다. 도성훈 당선자는 학생들이 사복 경찰에 맞으면서 잡혀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서지 못하는 '소심한 학생'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 4학년 여름방학 때 김인숙 여사를 만났다. 1985년 2월 졸업한 직후인 그해 7월 약혼식을, 이듬해 1월 결혼식을 올렸다.
도성훈 당선자가 교사가 된 데에는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도 당선자의 조부는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손자에게 일깨워 주기 위해 노력했다. 도 당선자는 누군가의 스승이 되는 것이 보람된 일이라고 느꼈고 대학 때 교직 이수를 하면서 교사의 길을 걷게 됐다.
1985년 인천성헌고(현 인제고)에서 첫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재단비리와 파행적인 학교 운영에 맞서 평교사협의회를 조직했고 초대 회장을 맡아 학교 정상화 투쟁을 진행했다.
도성훈 당선자가 첫 교직생활을 시작한 인천성헌고등학교에서의 활동모습. 그는 평교사협의회를 만들어 학교 정상화 투쟁을 진행했다. /도성훈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
도 당선자는 학교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다 해임됐다. 이후 학생, 학부모와 함께 징계 철회 투쟁을 진행했고, 농성 23일 만에 교장과 교감이 교체됐다.
도성훈 당선자는 1989년 6월 전교조 인천지부가 결성될 때 주도적 역할을 한 교사 중 한 명이었다. 두 달 뒤인 8월 전교조 가입 활동 등을 이유로 해직당했다. 해직 교사 신분으로 전교조 인천지부 사무국장과 수석부지부장, 국공립중등지회장 등을 맡았다. 전교조 합법화 방침에 따라 1994년 복직해 관교중, 인천여자공고(현 인천뷰티예술고)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도 당선자는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 전교조 인천지부장 선거에 당선되면서 11대, 12대 지부장을 지냈다. 지부장 임기를 마치고 부개고, 동인천고를 거쳐 2016년 인천형 혁신학교인 동암중 교장으로 취임했다. 교
도성훈 당선자는 제11·12대 전교조 인천지부장을 맡았다. 그는 전교조 인천지부가 결성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이 때문에 교단을 떠나기도 했다. /도성훈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
장으로 있으면서 학생, 학부모, 교직원, 마을주민이 한마음으로 소통하고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위해 같이 노력하는 '마을 교육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올해 초 인천시교육감 선거에 나서기로 결정했고, 올해 3월엔 인천지역 88개 시민사회단체와 5만여 시민참여단이 참여한 민주진보 촛불교육감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선거에서 '함께 만드는 공정한 인천교육'을 앞세웠고 인천시교육감으로 당선됐다.
그는 '기회는 균등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평등교육 실현'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며 '혁신미래교육', '안심교육', '소통교육', '평등교육'의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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