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사법농단을 넘어서는 길

신승환

발행일 2018-06-18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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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는 예외적으로 유지될 뿐
법의 정당성 무너지면 붕괴의 길로
그 상태 넘어 정상성 회복하는 길은
자신의 부정 돌아보는데서 시작된다
역사는 또다른 정상 찾아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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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지난 정부 시절 있었던 사법농단 사건은 사태의 심각함에 비해 너무도 가볍게 다뤄지고 있다. 최고의 정치권력과 최고의 법치권력이 음습한 거래를 통해 법을 사사로이 적용했다고 한다. 이런 불법적 거래 의혹에 대해 사법부의 신뢰 운운하는 말은 사태의 본질에서 한 참을 벗어난 피상적 비판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정치체제에서도 권력은 그 구성원의 합의와 동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그때 그 정치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은 법에 대한 동의와 수용에 있다. 그런데 그 법이 마음대로 집행된다는 것은 이 정치 체제의 정당성이 사라졌다는 말과 같다. 이제 그 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를 인용했으며, 그 순간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정지되었다. 그런데 만일 대통령이 이 판결을 무시하고 계속 청와대에 머물겠다고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국가 전체가 파국에 이르렀을 것이며, 생각하기도 싫은 폭력과 혼돈이 몰아닥쳤을 것은 자명하다. 다행히도 그는 법을 수용했으며 그래서 법의 정당성과 국가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 법이 법을 판단한다는 이들에 의해 정말 '제멋대로' 작동한다는 엄청난 일이 실제였다는 것이 이 사건의 전말이다. 본질은 우리가 합의한 정치체제와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정당성을 잃었으며, 그래서 이 모두가 유효하게 유지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죄가 법을 집행하는 사람에 따라 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최고의 모순이 아닌가. 그런데 그 법을 집행하는 최고 기관의 책임자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지난 6월 7일 전국 법원장들이 내놓은 입장이란 것이 기껏 "사법부에서 고발, 수사의뢰 등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말이었다. 법을 집행하는 최고 책임자들이 스스로 합법적 과정을 부정하고 있다. 법에 의해 자신의 정당성을 보장받는 이들이 스스로 그 정당성을 부인하고 있다. 자기부정과 자기모순이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일부 부장판사들이 이러한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하여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을 깊이 우려하고", "사법행정권 남용행위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 사회를 유지하는 최후의 정당성이 무너진 마당에 신뢰 운운하는 것은 근본 대책이 아니다. 지강헌이 외쳤던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사실이 되었다. 누가 판결에 불복하더라도 그를 정당하게 심판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와 사회의 체제 정당성이 무너진 것이 이 사태의 본질이다.

이제 우리는 왜 법은 언제나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지 알게 되었다. 왜 수많은 노동자들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했음에도 처벌받는지 알게 되었다. 평범하게 살던 이웃 아저씨가 왜 갑자기 무서운 간첩이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왜 어떤 사람은 수십 억, 수백 억원을 받아도 죄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몇 천원의 돈 때문에 감옥에 가는지 알게 되었다. 왜 그들은 퇴임 후 몇 십억원이라는 불가능한 돈을 수임료란 이름으로, 전관이란 이름으로 부당하게 벌어들일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잘못이 없어도 감옥에 갈 수 있으며, 죽을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법이라는, 정당하지만 사실은 지극히 부당한 법집행에 달려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예외가 정상이 된 상태에 처해졌다.

예외 상태는 예외적으로 유지될 뿐이다. 법의 정당성이 무너진 사회는 붕괴의 길로 내닫게 된다. 이 예외 상태를 넘어 정상성을 회복하는 길은 자기가 초래한 부정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예외를 정상으로 간주하는 그들은 멍청한 것일까, 아니면 악한 것일까. 스스로에서 비롯된 부정을 넘지 못할 때 그 자신이 부정되고 해체된다. 역사는 예외에서 또 다른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예외상태를 넘어서는 새로운 언어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 문법은 무엇일까.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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