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63]삼성-15 반도체신화의 그늘(下)

잇단 뇌물이슈 피해간 '자본권력의 힘'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8-06-26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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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유착 상상초월 로비상납고리
1995·2002·2007년 사건도 견뎌내

한화와 선대회장 간 신뢰 밑바탕
화학·방산서 2조원대 빅딜 성공

삼성 로고
삼성은 이 땅의 재벌비리 관련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자유롭지 못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식으로 삼성은 국내 최대의 기업집단이자 명실상부한 재계의 리더라는 이유로 추정되지만 그럼에도 '관리의 삼성'답게 잘 견뎌냈다.

그러나 이건희가 2대 총수로 취임한 이후 비리혐의 뉴스가 과거보다 더 자주 불거졌는데 시작은 1995년 11월 검찰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4천억원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100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건넸다는 혐의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사건으로 1995년 11월 16일 구속됐으나 이 회장은 1996년에 불구속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 1997년 10월 개천절 특사로 사면됐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는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선거였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유력 대선주자 이회창 후보를 내세워 재집권의 꿈을 키웠는데, 선거자금 불법조성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 후보측에서 LG로부터 150억원 가량의 뇌물을 현금으로 가득 채운 트럭을 받은 것을 비롯해 삼성, SK, 현대자동차, 롯데 등으로부터 각 100억원씩 수수하는 등 총 823억원의 뇌물을 거둬들였다는 혐의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재벌들의 정치권에 대한 뇌물 상납에 국민들이 경악한 것이다. 이후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삼성은 한나라당에 324억원, 민주당에 21억원, 자민련에 15억여원을 무기명 채권으로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7년 10월 29일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발표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조성의혹 폭로는 압권이었다.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출신의 김 변호사는 1997년 8월 삼성에 입사해 2004년 8월 퇴사할 때까지 7년 동안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으로 근무했었다.

당시 그는 삼성의 비자금 규모가 10조원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퇴직한 지 3년이 지난 당시에도 김 변호사 명의의 은행계좌에만 김 변호사가 모르는 현금이 50억원 이상 보관돼 있다고 했다. 해외 비자금은 추정조차 불가능하다고도 했다.(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2010년, 36~37면)

같은 해 11월 26일에는 삼성물산의 해외지점들이 SDI(삼성전관)와 비자금 조성에 관한 합의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삼성물산 런던지점의 경우 해외에서 메모리를 100원에 사온 뒤 SDI에 120원에 팔아 1원은 대행 수수료로, 나머지 19원은 비자금으로 조성했다는 것이다.('노컷뉴스', 2007년 11월 26일)

삼성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자금을 조성해 임직원 명의의 차명주식 형태로 숨기고 있으며 잡음을 방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권력기관에 로비를 해왔다고도 했다.

이후 특검(조준웅 변호사)의 수사결과 4조5천억원 가량의 이건희 회장 차명재산이 드러나며 조세포탈혐의가 밝혀졌다. 당시 삼성 측에선 이병철 선대회장이 남긴 유산으로 미처 실명전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김용철 변호사 폭로사건은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삼성의 차명재산 사건은 이건희 회장 형제간의 법적 다툼으로 비화됐는데 발단은 삼성가의 장손인 이맹희 제일사료 회장이 2012년 2월 14일에 서울중앙지법에 삼성생명 주식 824만여 주와 삼성전자 주식 등 7천억원 상당의 재산을 반환하라고 소송한 것이다.

창업자가 남긴 삼성의 여러 차명주식을 이건희가 독식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자신의 몫을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이맹희 회장이 차명주식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 것은 2011년 6월 당시 이건희 회장 측에서 "특정 상속인이 차명재산을 실명 전환하는 시점에서 다른 상속인들이 자신의 상속 지분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의 문서를 보내고 서명날인을 요청한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이건희 회장의 형제간은 물론 조카 등까지 가세해 집안 분쟁으로 확대됐고 이후 청구금액은 최종 4조849억원까지 불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2월 서울고법 민사14부가 '제척기간 경과' 등의 이유로 원고(이맹희) 패소 판결을 내림으로써 종결됐다.

2014년 11월에는 삼성과 한화그룹간의 2조원대 화학 및 방산부문 빅딜이 화제가 됐다. 11월 6일 삼성테크윈의 지분 전량인 32.4%와 삼성종합화학의 지분 57.6%를 한화에 넘기기로 계약한 것이다.

상장사인 삼성테크윈은 8천400억원에 (주)한화로, 삼성종합화학은 1조600억원에 한화케미컬과 한화에너지가 공동으로 인수했다.

경남 울산과 충남 서산 석유화학단지 내에 근거를 둔 삼성종합화학의 전신은 삼성에 엄청난 시련을 주었던 한국비료이다. 한국비료는 삼성이 건설했으나 한비사건으로 1967년 정부에 헌납됐다.

1994년 2월 정부는 75개 정부투자기관 및 출자회사의 민영화를 단행했는데 한국비료도 매각대상이었다. 당시 한비의 지분은 산업은행(34.6%). 삼성(30.2%), 동부그룹(30.8%) 등으로 삼성과 동부그룹 간에 인수경쟁이 치열했으나 1994년 7월 15일 공개경쟁입찰에서 한국비료는 삼성에 낙찰됐었다.

삼성테크윈은 영상보안장비(CCTV), 칩마운터(반도체 칩 장착장비), 가스터빈 및 K-9 자주포 등을 생산해 2013년에는 매출 2조6천298억원에 영업이익 960억원을 시현했는데 삼성테크윈은 삼성탈레스의 지분 50%를 지닌 탓에 한화는 탈레스의 공동경영권까지 확보했다.

삼성탈레스는 2000년 삼성과 프랑스 탈레스인터내셔널이 50대50 지분으로 설립한 기업이다. 구축함의 전투지휘체계, 레이더 등 감시정찰장비 등 방산 전자업체로 2013년 매출 6천176억원, 영업이익 206억원을 달성했다.

한편 삼성테크윈은 삼성종합화학의 지분 23.4%와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 10%도 보유한 탓에 한화그룹은 삼성종합화학 지분 총 81%를 확보했다.

이건희 회장과 한화 김승연 회장 간의 오랜 신뢰가 빚은 결과로 한화는 이를 통해 방위사업과 석유화학분야의 국내 1위로 도약하게 됐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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