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서 찾는 고려 1100년의 흔적·7]고려건축, 비움의 공간과 채움의 길

'조화의 미학' 거스르지 않으며 자연을 품다

이승연 기자

발행일 2018-06-26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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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여주 고달사지 근경(경기문화재연구원)
여주 고달사지 근경. /경기문화재연구원 제공

긴장된 배치로 깊이감 완성 '회암사'
자연스럽게 주변 경관 확장 '고달사'
불사·역원 결합 실용성 더한 '혜음원'
땅·건립배경·기능 맞춘 독창적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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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다양성과 역동성이 담긴 문화를 꽃피웠다.

고려인의 열린 사고와 미적 감각은 유적과 유물을 통해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선승들이 머문 고달사와 왕실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회암사, 역원의 기능이 강조된 혜음원은 단연 독보적이다.

이 세 절은 옛 기록과 함께 그 터가 발굴되어 당시 시대상과 불교사원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모두 야트막한 산자락과 물길로 에워싸인 완만한 경사지에 영역을 구성해 나갔다. 회암사가 긴장된 배치를 통해 공간의 깊이감을 완성했다면, 고달사는 자연스레 이끌려 들어서며 주변 경관 속으로 공간을 확장했다.

이에 비해 혜음원은 불사공간과 역원공간을 적절히 결합시켜 실용성을 더하였고, 후면에는 행궁영역이 부가되면서 공간의 위계를 부여하였다.

여주 고달사지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선종사원이면서 남한강변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나말려초 남한강 유역에는 여러 선종사원들이 들어서면서 육로와 수로를 통해 승려는 물론 장인과 여행자들의 왕래와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절의 측면을 따라 어느 사이 넓은 마당에 들어서면 불전과 탑이 살며시 보이고, 그 앞으로 지나쳐온 승방과 수행공간이 물결치듯 내려다보인다.

그 위로는 고승들이 머물렀던 행적을 기념하는 건물과 탑비, 부도가 놓여 있다. 이처럼 고달사는 비어둔 공간의 절점에 부도와 탑, 석등을 설치하여 공간의 흐름과 성격을 유도하며, 10세기 수준 높은 조형예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사진3.양주 회암사지 서승당지(경기문화재연구원)
양주 회암사지 서승당지. /경기문화재연구원 제공

양주 회암사지는 고려 말의 문인 이색이 262칸이라 기록한 것처럼 궁궐에 비견될 만큼 질서 있는 건물 배치와 규모를 자랑한다.

건물구성을 보면 주지의 거처인 방장과 설법하는 법당, 부처님을 모신 불전, 승려들이 모여 정진하고 공양하는 승당, 음식을 조리하는 부엌, 각종 요사, 창고, 화장실 등 다양한 기능의 건물들이 건립되었다.

이들 건물들은 밀집된 배치 속에서도 빛과 물길의 흐름을 따라 내·외부공간을 조화롭게 구성하였으며,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태의 온돌구조도 이루어냈다.

개경에서 남경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파주 혜음원지는 예불 공간 앞쪽으로 많은 행인들이 잠시 쉬어가거나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도록 여러 겹의 행각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배치는 기능에는 충실하나 정적이고 단조로운 구성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숨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물의 흐름이다.

경기문화재연구원
후원에서 끌어들인 계곡물과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은 건물지 사이를 부유하다가 연못에서 잠시 멈추기도 하고, 다시 흘러나와 건물 옆 또는 계단, 축대 등을 종횡무진하며 공간의 수직적 변화와 수평적 풍광을 이끌어낸다.

이것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탁월한 기술력과 조형감각으로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창출한 것이다.

고려시대 건축은 그것이 자리한 땅이나 건립배경, 기능에 맞게 독창적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들 모두 자연과 인간, 마당과 건물, 길과 사람이라는 '비움과 채움'의 의지를 담아 극적인 전이감과 역동성을 표현해 내고 있다.

/이승연 경기문화재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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