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칼럼]이산가족의 희망고문 또 시작됐다

이영재

발행일 2018-06-26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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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보다 더 적은 남북 각각 100명이라니
여기저기 실망으로 체념 섞인 한숨소리만
생사확인 등 北 거부하자 우리측 받아들여
추첨 탈락자들 '언제될지 모르는' 비극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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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논설실장
이럴 줄 알았다. 그래도 '설마'했다.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달라서다. 문제가 있다면 애매모호한 문구로 가득했던 그 선언문이다. 4월 27일 판문점 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그 선언문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정도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 다음에 덧붙여진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가 문제였다. 이게 이산가족 가슴에 뜨거운 '희망'의 불을 지폈다.

특히 그날 만찬장에서 남북 정상이 술까지 곁들였다는 보도는 '정말 이번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더구나 그로부터 꼭 한 달 뒤, 젊은이들이 '번개'하듯 남북 정상이 다시 판문점에서 만났을 땐 '모든 이산가족이 상봉할것'이란 생각에 가슴까지 뭉클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은 실향민 2세대고 이산가족 상봉 경험도 갖고 있지않은가. 누구보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이산가족이면 누구나 1세대인 부모님을 모시고 평양이든 영변이든 함흥이든 마음껏 다녀올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번 역시 일회성 보여주기 행사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지금 이산가족들을 엄습하고 있다.

우선 지난 22일 남북관계자들이 금강산 호텔에서 만나 오는 8월 20~26일 남북 각 100명씩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행사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했다는 보도는 귀를 의심케 했다. 처음엔 '1000명'에서 '0'이 하나 빠진 줄 알았다. 5만7천여명의 이산가족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15년 10월 20일 20차 이산가족 상봉 때보다 가족 수가 더 줄었다. 남북 각각 100명이라니. 여기저기서 실망으로 가득 찬 이산가족의 체념 섞인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난 20차 행사의 상봉 확률은 662대 1 이었다. 추첨장에는 머리가 하얗고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추첨 과정을 지켜보다 최종 탈락한 고령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컴퓨터를 이용해 500명의 1차 후보자가 선정됐다. 여기서 다시 400명을 탈락시킨다. 최종 경쟁률은 569대 1 이었다. 애초에 탈락한 이산가족도 그렇지만 100명에 들지 못하고 다시 탈락한 실향민에겐 이 과정은 너무도 가혹하다. 그런데 박경서 한적 회장은 어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선정되신 분들은 축하를 드리고, 선정되지 못하신 분들은 다음 기회에 꼭 한을 풀어드리겠다". 이 말은 "이번에 당첨된 분들은 축하한다. 떨어진 분들은 다음 기회에"로 들렸다.

이번 상봉과 관련해 대한적십자사의 변명은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측이 상봉 규모를 남북 각각 200명으로 확대하고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 확인, 이산가족 고향 방문, 상봉 행사 정례화 등을 요구했는데 북한이 거부했다고 한다. 그걸로 끝이다. 그랬으면 우리도 협상을 거부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무엇이 두려웠던지 대한적십자사는 북한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일회성 정치 이벤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한번에 100명씩 1년에 네 번의 상봉이 이뤄질 경우, 생존하는 3만5천960명의 고령이산자의 상봉이 성사되려면 99년이 걸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산가족 고령자가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런데도 다음 상봉은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산가족이 원하는 건 오직 한가지다. 만나게 해 줄 능력이 안되면 생사 확인만이라도 해 달라는 것이다. 북측 가족이 사망했으면 이제 모든 '희망'을 접을 것이고, 다행히 살아 있다면 서신 교환으로 안부만 묻겠다는 것이다. 이게 그렇게도 어려운 부탁인가. 분단의 최대 희생자인 이산가족들의 이 정도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그가 누가 됐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논할 자격이 없다. 상봉 재개로 이산가족의 끔찍한 희망고문도 다시 시작됐다.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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