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유리공장 이 계장'展… 인천도시역사관 첫 전시]최초·최대 만석동 공장 '40년 희로애락'

김영준 기자

발행일 2018-06-27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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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도시역사관 판유리공장 전시회
27일 개막을 앞 둔 '판유리공장 이 계장'전 모습.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한국전쟁후 국토 재건위해 1957년 지어져
다양한 제품 생산 성장가도서 1997년 쇠락
관련자료 70여점 출품 변천과정 '한눈에'


인천시립박물관 인천도시역사관(연수구 송도동)의 첫 전시회 '판유리공장 이 계장'전이 27일 역사관 2층 작은전시실에서 막을 올린다.

동구 만석동에 있었던 인천 판유리공장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운크라(UN 한국재건단)의 지원을 받아 정부가 추진했던 3대 기간산업(시멘트·비료·판유리)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건설된 인천 판유리공장은 주택의 창호에 사용되는 건설자재인 판유리를 생산했다.

공장 부지는 1940년대 일제가 군수공장을 짓기 위해 묘도(괭이부리섬)를 깎고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였다. 당시 일제가 부설한 인천 북부해안 철도가 인천역까지 이어져 있고 부두시설 또한 갖추고 있어서 판유리 공장을 짓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1957년 9월 30일 공장 준공식을 갖고 판유리 생산에 들어간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 인천 판유리공장은 그 후 공장을 확대해 가면서 건설자재인 판유리를 비롯해 형광등 등에 쓰이는 관유리, 자동차 유리 등 다양한 유리제품을 생산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유리공장으로 거듭났다.

1980년대 들어 경쟁업체의 등장과 저렴한 외국산 유리가 수입되면서 회사경영에 어려움을 겪어오던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는 문을 연 지 꼭 40년이 되던 1997년 12월 인천 공장의 문을 닫았다.

인천 판유리 공장에는 한때 2만여 명의 노동자가 근무했다.

이와 함께 만석동, 화수동 일대에 위치한 인천제철, 인천차량제작소, 대한중공업, 한국기계공업, 삼화제분, 동일방직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은 인천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산업역군이었다.

인천도시역사관 판유리공장 전시회2

이번 전시는 한때 인천 대표 공장이었던 인천 판유리공장의 역사와 함께, 공장에서 근무했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가졌던 자부심과 회사생활을 보여주기위해 기획됐다.

인천 판유리공장과 관련한 70여점의 자료가 출품됐다. 1957년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 최태섭 사장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보고했다는 판유리 시제품 등의 재현품도 전시된다.

또한 1965년 공장에 입사해 1988년 퇴직할때까지 24년간 이 공장에서 근무했던 이병무(이 계장)씨의 일기를 전시한다.

역사관 관계자는 "지난 겨울 인천도시역사관으로 관명을 변경한 뒤 처음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향후 도시역사관의 운영이 인천의 도시 변천 과정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는 10월 28일까지 진행된다. 문의:(032)850-6031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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