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미의 나무이야기]다양한 이야기와 전통 문화가 깃든 느티나무

조성미

발행일 2018-07-02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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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영통의 500여년 넘은 보호수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가지를 잘라 서까래를 만들었고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칠 무렵이면
구렁이 울음소리 냈다는 영험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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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한여름, 강렬하게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시원한 그늘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이럴 때면 초록빛 숲의 바다로 들어가 숲의 향기를 들이 마시면 청량한 바람 속에서 몸과 마음의 평온을 찾고 다시금 재충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고향마을 어귀에 자리 잡고 서서 큼지막한 가지들로 짙은 그늘을 드리워주는 느티나무는 특히 여름에 사랑받는 나무이다. 느티나무는 수명이 길고 아주 크게 자라기 때문에 예부터 우리 조상들이 각지에 정자목이나 당산나무로 많이 심어 전국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다. 그래서 오랜 시간 우리 민족의 역사와 일상생활 속에서 매우 친숙하게 관계를 맺어온 나무로 희노애락을 함께 해왔으며, 수 백 년을 묵묵히 한 자리를 지켜왔기에 온갖 사연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조상들은 당산나무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로서 신령이 깃든 신목(神木)으로 대접을 했다. 마을사람들의 건강과 무병장수는 물론 풍년을 기원하며 정성스럽게 제를 올렸다. 신성시했던 나무이기에 느티나무의 줄기나 잎을 꺾으면 그 마을에 재앙이 온다거나 나무에 해를 끼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고 믿고 보호해 왔다.

느티나무는 전통 농경사회에서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나무이기도 했다. 봄에 잎이 나올 때 한꺼번에 많이 나오면 풍년,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고 한다.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느티나무는 19그루로 은행나무 다음으로 많지만 전국 곳곳에서 노거수로 보호되고 있는 나무는 느티나무가 5천400여 그루로 가장 많다. 경기도내 보호수 중 최다 수종 역시 느티나무다. 지난달 말에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수원 영통의 수령 5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장맛비에 부러진 것이다. 이 나무는 조선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가지를 잘라 서까래를 만들었고,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칠 무렵이면 구렁이 울음소리를 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영험한 나무로 대한민국 보호수 100선에 선정되기도 한 나무이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더욱 크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잎이 지는 넓은 잎 큰키나무이다. 우리나라 평안남도 이남 전역에 분포하며 중국과 일본에도 자생하는 나무다. 다 자라면 나무의 높이가 30∼40m, 가슴높이 직경이 최대 3m에 이른다. 가지가 위와 옆으로 뻗어 위쪽이 넓고 둥근 모양을 갖게 된다. 잎은 끝이 뾰족한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4~5월에 피는 꽃은 암수한그루이며 수꽃은 햇가지 아래쪽에 암꽃은 햇가지 끝에 달리는데 꽃잎이 없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아는 이가 드물다. 10월에 열리는 열매는 갈색의 콩팥모양이며, 수피는 회갈색으로 고목이 되면 코르크층이 발달해 용비늘처럼 독특하게 갈라져 떨어진다.

느티나무 목재는 제일로 치는데 바로 흔히 말하는 괴목(槐木)이다. 색상과 무늬가 아름답고 재질이 단단하며 건조과정에서 트거나 갈라지는 일이 없어 건축재, 가구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으며 불상을 조각하는데도 쓰였다. 신라의 천마총이나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관도 느티나무였으며 현재 남아 있는 고려시대 건축물 기둥의 55%가 느티나무로 나타났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무류처럼 약재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린잎을 삶아서 나물로 먹었으며, 봄에 어린잎을 살짝 말려 멥쌀가루, 팥과 섞은 후 시루에 쪄서 느티떡을 해먹었다.

/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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