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우리는 같이 있고 가치 있다"

권순대

발행일 2018-07-09 제2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간이 갖는
절망의 무게가 얼마인지
그 순간에 사로잡힌 청소년들
그 시간 스스로만 버텨야 한다면
대체 사회란 무엇이란 말인가


전문가 권순대2
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지난 6월 15일부터 7월 1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죽고 싶지 않아' 공연이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아'는 2015년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류장현과 8명의 청소년이 '자유를 위한 몸의 낙서'를 주제로 함께 작업한 워크숍에서 출발하여 2016년 국립극단 청소년극으로 초연한 작품이다. 이번 2018년 공연은 청소년 17명이 예술교육 활동, 워크숍, 그리고 오픈 리허설을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팸플릿에 소개한 17명의 생생한 기록은 공연에서 본 배우의 에너지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연극 '죽고 싶지 않아'는 좌절의 시간을 건너는 법에 관한 청소년의 보고서이다. 청소년에게 우리 시대의 교실은 무엇일까. 어느 초등학교 교문 위에 "6학년 목숨 걸고 공부하는 기간"이란 문구의 현수막을 거는 사회에서 말이다.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의 기간도 모자라 초등학교에서부터 경쟁으로 내몰리는 사회에서 교실은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전달하고 있을까. 승자독식의 경쟁을 부추기며 "견뎌라, 견뎌라, 대학에 가면 천국이 열리리라"라는 말이 유예하는 시간 동안 청소년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건너고 있을까. 막상 대학에 가면 그 문장은 다음과 같이 바뀌는 사회에서 말이다. "견뎌라, 견뎌라, 취직을 하면 천국이 열리리라."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또 어떤 다른 문장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덮어두자.

팸플릿에 소개한 어느 청소년이 전하는 말은 단지 오픈 리허설을 함께한 소감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이 놓인 지점을 적확하게 짚고 있다. "바다에 있어야 할 물고기들이 땅에서 펄떡거리는 느낌", "심장이 멈춰서 죽는 게 아니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할 때의 죽음"이라는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할 대상은 청소년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말은 "너희에게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라는 담론을 향해 있다. 그 담론이 유예하는 시간 동안 현재의 권리를 독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향해 있다. 연극 '죽고 싶지 않아'와 함께한 17명의 청소년은 "우리는 같이 있고 가치 있다"라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일인칭 대명사인 '우리'를 청소년들로만 한정할 필요도 없고, 한정해서도 안 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연극 '죽고 싶지 않아'를 보는 동안 겹쳐 보이는 영화 한 편이 있었다. 8 마일(8 Mile, 2002년, 에미넴 주연). 영화 8 마일은 미국 자동차공업의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가 1980년대 후반부터 쇠락한 이후의 디트로이트 8마일 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디트로이트 8마일 로드는 이 도로를 경계로 북쪽에는 백인이, 남쪽에는 흑인이 주로 거주하고 있어 분리의 선이기도 하다. 백인 래퍼(에미넴)가 8마일 로드 남쪽에서 흑인들과 랩 배틀을 펼쳐 래퍼로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성장 플롯의 전형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에미넴이 랩 배틀을 펼치며 상대를 물리치는 절정의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에미넴이 좌절의 시간을 건너는 정적이며 서정적인 장면들이다. 그 장면들 중 하나가 에미넴이 황폐한 디트로이트 도시를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이다. 창밖 풍경을 보던 에미넴이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메모를 한다. 접혀 있던 종이를 두 번 펼친다. 바랬고 고깃고깃하다. 그런데 그 종이에는 이미 다른 메모로 빼꼭하다. 메모의 방향이 제각각이다. 빼곡한 종이의 여백에 또 다른 메모를 하는 짧은 순간은 얼마나 긴 시간을 말하고 있는가. 연극 '죽고 싶지 않아'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메모와 목소리가 결코 짧거나 가늘지 않은 이유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간의 지속이 갖는 절망의 무게가 얼마인지를 그 시간에 사로잡힌 청소년들만이 재야 한다면 대체 연극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 지속의 시간을 청소년들 스스로만 버텨야 한다면 대체 사회란 무엇이란 말인가. 연극 '죽고 싶지 않아'는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봐야 하는 청소년극이다.

/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권순대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