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칼럼]누구를 위한 지역공동체인가?

윤상철

발행일 2018-07-10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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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동체는 시민이든 기업가든
그들의 사회·문화·경제적 교류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집단…
누구만의, 누구들만의 것도 아니다
官이 주도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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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성남시에서 지역화폐로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신임시장은 지역화폐로 지급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풍요로운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아동수당을 받아 사용하게 될 엄마들은 자율에 맡기는 현금지급을 선호한다. 그들은 지역화폐가 사용지역과 용도가 제한되어 육아현실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시민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없었다고 반발한다. 또 다른 당사자인 기업이나 판매업체들은 아직 뚜렷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 이 사안은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간의 논란이자 이를 둘러싼 중앙정치와 연관되어 있지만 지역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에 화성시의 한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심포지엄에 주제발표자로 갔던 적이 있었다. 회의 주제가 '화성시민과 기업의 상생발전방향'이었던 만큼 심포지엄을 주최한 시민단체 회원뿐만 아니라 시의회, 상공회의소, 기업지원협의회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해 있었다. 의례 그렇듯이 시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이 기업들을 규제하는 한편 지원하는 시청 고위 공무원들도 참석하였고 직접 제도와 정책을 홍보하고 있었다. 주제발표에서 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목적이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여 그 주식가치를 높이거나 이해당사자들의 만족도를 제고함으로써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오히려 기업 자체가 지역공동체의 시민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일종의 사회적 규범으로서 그 기원이나 의미와 무관하게 당연시되면서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자 했다.

이 심포지엄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진짜(?) 시민들이 등장하면서 주최 측의 의도에서 빗겨난 듯했다. 기업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대와 지역 농산물의 출하 시간대가 겹치면서 농민들의 고충은 더 심각해졌다고 했다. 기업들은 농촌의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농촌마을 안으로 들어오지만 막상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된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겨울 농한기에 일자리를 원하지만 그들이 보는 것은 공장을 드나드는 외지인들뿐이라고 불평한다. 넓은 심포지엄 강당에 불과 몇 십 명의 청중들이 듬성듬성 자리한 이유는 억센 비 때문이 아니고 진짜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탓이라는 성토도 있었다.

1990년대 말경이니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나는 교환연구자로 미국의 스탠포드대학에 2년간 머무르면서 그 옆의 팔로알토시에 살았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대학에 온 외국 연구자나 유학생들의 현지 적응이나 언어학습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 한 분을 만났다. 덴마크 국적의 그는 미국시민권을 취득할 자격을 갖추고 있었지만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애정과 부채감 때문인지 30년 넘게 그린카드를 바꾸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의 지역공동체를 뜨겁게 사랑하고 그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이 늙은 나이에 왜 주변 지역의 흑인들에게 집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해비타트 포 휴머니티' 사업에 열심히 참여하는가를 설명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북유럽 출신의 완벽한(?) 백인이 흑인들과 하이파이브와 허그를 즐기는 모습은 늘 생소하기만 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이크로소프트, 휴렛팩커드, 구글, 엡손 등의 회사와 사무실 등을 자랑스럽게 소개했고, 그들의 창업주나 가족들이 자신의 동료 시민임을 뿌듯해했다. 그리고 휴렛의 장남이 운영한다는 자그만 극장으로 안내하였다. 평생을 사업가로 살다가 은퇴한 그였지만 대기업가의 장남이 지역주민들에게 철 지난 영화를 보여주면서 젊은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러나 아무런 이익도 남기지 못하는 사업에 몰두한다는 사실에 감동스러워했다. 시정부나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공청회는 늘 만석이었고 그는 그 자리에 다녀온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곤 했었다. 대형할인매장과 아웃렛에 익숙한 미국사람인 그가 마지막에 알려준 이야기는 "그들이 돌아오고 있어. 걸어가서 그들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야겠어. 저 가게의 주인은 우리 옆집에 살던데"였다. '그들'은 더 이상 외지인이 아닌 다운타운 사업자들이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시장과 시공무원의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지역공동체는 일반 시민이든 기업시민이든 그들 사이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다. 누구만의, 누구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다. 누가 일방적으로 주도하거나, 특히 관이 주도하는 자리에 공동체의 싹이 트고 자라기는 어렵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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